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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離瓦解하던 生民이오. 幾百年 專制政治下에 呻吟苦痛하던 生民이라. 라고 있듯이, 당시 주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이무렵에 발표된 의병의 격문이나 광고문이 주목되는데, 그것은 이들의 주장에 주민들의 심각한 상황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保國安民’이나 ‘愛國救民’, 그리고 ‘爲國保民’ 등의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사실은 의병장과 관련된 격문이나 통문뿐만 아니라 당시 신문에서도 발견된다. 大將이 出席 演說曰 吾輩가 離父母棄妻子하고 風餐露宿에 不顧死生하는 本意는 何在오 하면 爲國濟 民코자 함(大韓每日申報 1908년 12월 26일자 「義兵消息」). 즉, 이들이 의병을 일으킨 목적이 ‘爲國’과 함께 ‘濟民’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부터 이들은 ‘安民’을 비롯한 ‘濟民’·‘救民’ 등의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은 것이다. 이는, ‘保國’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지역민들의 생존권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후기의병을 주도한 수많은 의병장들은 활동지역 내의 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예컨대, 납세거부투쟁·세무관리의 徵稅 저지·假義의 침탈과 富豪의 討索 방지·米穀의 일본 유출금지 등을 주도했던 것이다. 평민출신의 의병장 안규홍이 이끌던 ‘안담살이의병’이 그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된다. 桐巢山中에서 군사를 먹인 다음 명령을 내렸는데, “의병으로서 민간을 침포하는 행위를 금한다, 주민 이 밖에다 식량을 파는 행위를 금지시킨다, 여러 명목으로 파견된 관원이 주민들에게 해악를 끼치면 처단한다, 무릇 州里에서 공공연히 誅求를 행하는 자를 근절시킨다, (일본세력을) 唱導하는 자부터 먼저 죽여서 羽翼을 없앤다, 外寇를 죽여서 그 새떼 같은 무리를 제거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근본을 보 호하고 우리나라의 命脈을 길이 보존해야 한다”고 하였다(廉在業, 『蘆月軒遺稿』, 「從弟在輔行錄」). 이들은 의병의 불법행위와 미곡의 일본유출 금지, 각종 명목으로 파견된 관리들의 불법 엄단, 가렴주구자의 처단, 친일세력과 일본인들의 제거 등을 표방하였다. 이와 같이 후기의병은 일제에 의해 고통받는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의병과 주민들의 유대는 한층 강화되었다. 그리하여 의병장 朴鏞植은, ‘의병과 주민은 머리와 꼬리처럼 서로 붙어있다. 재난은 서로 도와주며 서로 믿고 의지함이 마치 부모형제의 친밀함과 같다.’ 65) 라고 말할 정도였다. 주민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한 대표적인 65) 『편책』 80. 「都統大將 朴廣告」 ; 『獨運史』 1, 6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