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page

10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서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벽두까지 조선의 국내외 상황은 그야말로 累卵의 위기였다. 결국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꾼 조선은 1910년 8월 日帝에 의해 강제로 병탄되고 말았다. 훗날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린 黃玹은, ‘무궁화 세상이 침몰했노라(槿花世界已沈淪)’는 절명시를 남기고 망국의 한을 자결로 마감하였다. 당시 조선의 노쇠한 왕실뿐만 아니라 위정자들은 부정부패의 대명사나 다름없었었다. 그들은 백성들의 원한에 사무친 절규를 애써 외면한 채 타락과 방종을 일삼으며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도외시했던 것이다. 그 결과 백성들을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망국노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國際戰의 무대로 유린되었다. 즉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5년의 러일전쟁이 그것이다. 그 최종 승자였던 일제가 조선을 전리품으로 챙겼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적지 않은 우국지사들이 제세안민의 다양한 방략을 제시하였으며, 수많은 민중들이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하기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던졌다. 특히, 1894년 초부터 약 1년 동안 전개된 동학농민혁명 시기에는 동학농민군의 엄청난 희생과 그 가족들의 고초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비규환이나 다름없었다. 곧이어 벌어진 의병항쟁 기간에도 이 땅의 우국지사와 민중들의 불굴의 투쟁과 희생이 반복되었다. 이에 이 글에서는 광주-전남지역 동학농민혁명과 의병항쟁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다 아다시피 동학농민혁명과 의병항쟁의 주무대는 전라도였으며, 구체적으로 그 시기는 1894-1910년 전후에 해당된다. 전라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 두 사건은 근대사회운동사의 발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민주장정 100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이 두 사건이 ‘민주장정’의 단초를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서 두 사건을 한국사의 연속선상에서 다루고자 한다. 광주-전남이라는 공간에서 이 두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조명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동학농민혁명과 의병항쟁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축적되어왔다.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전개된 두 사건에 대한 연구 역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편이다. 따라서 이 글은 그러한 선행 연구 성과를 바탕삼아 지역별 전개과정을 통해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