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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 본류와 운뚱천 사이로표시하고 있어서 이곳은 판교통출판 백현통 에 해당되고, 1872년 경 제작된 군현도에는 탄천 동쪽의 돌마띤 쪽에 ‘낙 생역’ 이 표시되어 있기도하며, 『구한말지형도』에도현재의 백궁역 부 근에 ‘역촌’이리는지명이보이기도한다. 1914년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통폐합하기 전까지의 행정구역을수록 한 조선총독부의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에는 ‘수내촌’ 이 광주군 돌마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국 낙생역은 판교 부근 아니면 수 내통부근으로 비정할 수 있는데 역이 없어지기 직전에는수내동부근에 위치하였던것으로보인다. 돌마면지역은-조선시대 역(購)을운영하는데 필요한경비를조달하 기 위한 역전(羅田)이 1901년까지도 존재하고 있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경기도각군소장(京鍵道各那訴狀)』 에는 역전(繹田)을- 농사짓던 돌마면 하2리에 시는 안수복(安守福), 김죽산(金竹山) 퉁이 1900년 12월 에 감세(減親)를 요구하는 소장(訴狀)을 냈고, 1901년 1월에는 돌마면 역 전(羅田) 작인(까~A) 맹돌남(굶突男) 등이 파역(罷羅) 후 양전(量田) 과정 에서 중액된 도조(體租)를 줄여 달리는 소장(訴狀)을 내기도 했다. 현재 분당의 빌딩 숲으로 변한수내동에는 역 터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였으며, 다만 전해 오는 지명유래에 의거해서 살펴본다면 수내3동동사무소 앞길을 ‘역말고갯길’ 로 이름붙 였으며, 판교 님쪽의 경부고속도로와 북쪽편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가탄천의 흐름을을따라남북으로 뻗어 있다. 일제시대의 표‘;로정책은 식민지 수탈 정책의 줄기를 이루한 것으로서 도로의 동급을 1∼3등 도로 및 등외도로 4종으로 나누었고, 통감부는 1906년부터 7년간 ‘도로개수계획’ 을 세우고 내부(內部) 산하에 치도국 (治道局)을 신설하여 1906년부터 10년까지 1, 2등 도로 총 806.6km를 완 공하였으며, 이듭해부터 1938년까지 2차에 걸쳐 치도사업을 펼쳤다. 이 때 조선시대의 때로(大路) 대부분은 1, 2등도로혹은철로부지로바뀌었 앓향 31 돌 마 지 역 의 역 사 와 화 유 』조 으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