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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이후에도 항일 운동은 신간회(新幹會)의 설립과 활동으로 이 어졌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활동하였던 신간회는 특히 광주군에는 두 개의 지회가 셜립될 정도로 다른 지역에 비하여 활발한 활통을 전개 하였다. 광주군에서의 신간회 설립을주도하고활동한 이들은천도교교 구장을 맡았던 한순회가 지회장을 맡았고, 한백봉, 석혜환, 한백호, 이대 헌, 유인목, 홍순석, 박기환, 한용회 퉁이 활동하면서 두차례의 개편 과 정을 거쳐 1930년대 초까지 활동 하다가 해산되었다. 신간회 활동의 중 심인물인 한순회, 한백봉 퉁은 돌마면 율리의 세거 문중인 청주 한씨 문 중의 후예들이며, 석혜환은 남한산성 내에 거주하면서 활동하였고, 유인 목, 이대헌은 하납 지역에서 거주하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신간회 설립 이전부터 교류하였으며, 만세시위에서도 상호간 의견을 모 아 동시다발 23 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하남지역의 이대헌이 돌마 지역과 같은 3월 27일에 하남의 객산(客山)에서 봉화를 올려 시위 군중을 모았 던 사실이나 남힌-산성에서의 만세운동또한같은 날봉화를올린 점이이 를말해주고있다. 일제시대에 돌마지역의 행정 책임자는 면장이었으며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 직원록』 에 의하면 1919년부터 1923년까지는 이준구(李浚九) 면장, 1924년부터 1927년까지는 이택규(李毛珪), 1928년부터 1934년까 지는 이갑규( 李甲珪), 1935년부터 1939년까지는 이근학(李根碼) 면장이 집무를 보았다. 이어서 1940년부터 1941년까지는 면장의 성명이 원산근 학(圓山根轉)으화 되어 있는바 이는 이근학 면장이 당시 창씨개명이 시 행되던 시기에 창씨 개명한 이름으로보인다. 이준구(李浚九) 면장은 「 대한제국관원이력서」에 수록된 이력서를 보 면 본관은 전주이고, 부친은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이경필( 李 康弼)이며, 1881년 1월 26일 출 생하여 돌마면 상 1리에 거주하 였던 사람 이다. 학력은 1887년 3월 1일 가정수학(家底受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 다. 그의 경력은 1902년 11월 1일 통신원 주사(通信院主事)가 되었고 돌마지역의 역사와 문화 윤 종 준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