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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향토 문화층서 @ 돌마 마을지( 下) 24일에는 정렉사(整理使)를 더하였다. 동년 7월 14일에는 이조판서(更暫 判書)가 되어 선부(選部)를 이끌었으며 동년 10월 22일에는 다시 호조판 서(戶暫判書)가 되었다. 숙종 20년 4월 1일에 다시 호조판서에 기용되었 으며 동년 4웰 2일에는 판의금부사를 맡았다가 동년 4월 20일에는 다시 이조판서(更裡判書)가 되어 선부를 아우르는 직책에 있다까 숙종 21년 1 월 12일에는 정일품(正一品) 보국숭록대부(輔國뽕錄大夫)에 올라 의정 부 우의정(議政府 右議政)이 되었다가 동년 2월 12일에는 의정부 좌의정 (議政府 左議政)으로 옮겼다. 숙종 22년 8월 11일에는 일인지하(-A之下)요 만인지상(萬A之上)이 라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뜰輔國 늦윷視大夫) 의정부 영의정(議政府領議 政)이 되어 삼년간을 영의정(領議政)으로 일하였다. 숙종 25년 12월 8일 에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맡았다가 남구만(南九萬)과 함께 각기 다른 곳으로 부처(付處)되는 귀양을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였다. 숙종 33 년 12월 4일에 졸(후)하였는데 충간(忠簡)이라는 시호(說號)가 내려졌다. 묘(훌)는 율동 산 2-1번지에 있었으나 후손들이 돌보지 많아서 도굴꾼 들이 도굴하여 가고 남은 것은이무것도 없다. 유장재(柳尙載, 生沒未詳) 휘(譯)는 상재(尙載). 숙종(關宗) 10년 5월 3일에 정구품(正九品) 종사 랑(從{土郞)으로 예문관 검열(藝文館 檢閔)에 보임되었다. 숙종 14년 3월 19일에는 부제학 최석정이 뽑은 14인의 한 사람으로 홍푼록(弘文錄)에 뽑혔다. 동년 4월 26일에 정육품(正六品) 승의랑(承議郞)으로 승차하여 사간원 정언(司課院 正言)이 되었다. 숙종 15년 1월 17일애는 도당(都堂) 에서 뽑은 17인의 홍문록(弘文錄)에 발탁되었다. 숙종 20년 5월 12일에 는 홍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擺)으로 옮겼다가 동년 5월 '.)0일에는 수찬 (修擺)이 되었고 동년 6월 11일에는 보덕(輔德)으로 옮겼다. 통년 12월 20일에는 다시 부수찬으로 옮기고 12월 27일에는 다시 보벽으로 전보되 양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