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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향토 문화총서 @ 돌마 마을지(下) 이공화(李悲華, 1712∼1782) 휘(譯)는 공화(뽕華), 어려서부터 두형들과 함께 율리(棄里) 외가에 자 주와서, 외사촌(外四#)들과어울리며 학문을 익혀 삼형제가모두학문 에 관한한 출뚱하였으나 둘째만이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土元及第) 를 함으로써 문중을 빛냈으나 이공화(李꿨華)는 음보(隆補)로 출사(出 此)하여 주부(主露)를 지냈으나 벼슬을 버리고 지금의 창곡동(용용洞) 서l지곡(世子김;)에 기거하면서 율리(票里) 외가(外家)에 7.}뚜 드나들었다 고한다. 묘소는 창팍동 세지곡(世子감) 산 48번지에 배위(配位)싹 합조(合%) 로 있었으나 분중(門 中)에서 천장(選賽)하였다. 이 연옥(李淵玉, 生沒未詳) 휘(譯)는 연-옥(淵玉). 어려서부터 청주한씨 문중 어른들에게 한문을 수 학하고, 젊은 나이에 3.1독립만세운동(獨立萬歲運動)에 참여하고, 치욕 의 국권유린(國權않觸)을 분개하며 살다가, 한백봉(韓百鳳) 선생, 한순회 (韓順會) 선생 퉁이 주도한 신간회(新幹會) 광주지회(廣州支會) 창립시 에 적극 가담하여 신간회(新幹會)지회(支會)의 간사(幹事)흡 맡아서, 물 산장려운동(物塵雙l勳運動)과 농민운동(農民運動)에 참여하여 애국활동 을한숨은애국지사이다. 묘소는 배위(配位) 광주이씨(廣州李民)와 율동 산 48번지에 있었으나, 마석에 있는 왕십 리 중앙교회 공원묘원으로 천장(選賽)되었다. 2-7. 문화유씨(文化柳民) 유장운(柳尙週, 1636∼1707) 휘(譯)는 상운(尙運).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현종(顯宗) 10년 10 월 21일에 정£「품(正六品) 승의랑(承議郞)으로 승차하여 사간원 정언(司 양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