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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세거서 q씨와 인물 -한동 열 佑)에게 입양(入護), 율리로 이거(移居)한 후, 족숙(族政) 한영창(韓永꿇) 에게 한학(漢學)을 수학(修學)하여 한학전경서(漢學全經書)에 통달(通 達)하였다. 천도교인(天道敎A)으로 천도교 중앙총부(天道敎中央總部) 중앙위원(中央委員)과봉도(奉道)를 역임하였다. 경술망국(康成亡國)의 의분으혹 지내던 중 3· 1독립만세운동(獨立萬 歲運動)을 체험하고, 자각(담覺)한 바 있어서 국민계몽(國民땅豪)과 독 립운동을 위하얘, 조직적인 활동이 필요(必要)함을 깨닫고 천도교(天道 敎)에 귀의하여 천도교(天道敎) 광주 교구장(廣州 敎區長)을 지내면서 독립운동(獨立運動)에 열중(熱中)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 광주지회(廣州支會) 결성(結成)시에는 한백봉 (韓百鳳), 이대헌(李大憲), 유인목(愈仁種), 박기환(朴基煥), 한용회(韓龍 會), 한진회(韓辰會), 한백호(韓百鎬), 이연옥(李淵玉) 등을 주축(主輔)으 로 조직(組織)을 만드는 데 주도적(主導的)인 역할(投劃)을 하여 신간회 (新幹會) 광주지회장(廣州支會長)으로 피선(被選), 열렬(熱烈)한 활동(活 動)을하였다. 천도교(天道敎) 간부(幹部)로서 전국순회강연(全國센뺑講演)을 다닐 때에는 안심가(安心歌)와 멸왜심고(滅優心告)로서 “무궁(無짧)한 내 조 화(造化)로 개(*) 같은 왜적(像願)놈들 일야간(一夜間)에 멸(滅)하고 아 국운세(我國運勢) 세계(世界)에 떨치리라.”는 내용(內容)은 한 번도 빼놓 지 않고 기도문(祝禮文)에 넣은 일화(速話)는 유명(有名)하다. 묘소는 율동(票洞)공원 저수지(財水池) 번지 · 점프대 북쪽 산 2-1번지 내 공원산책로(公園散策路) 옆에 배위(配位) 파평윤씨(城平尹J~)와 합조 (合%)이다. 한진회(韓辰會, 1887∼1953) 휘(譯)는 진회(辰會)이고 호(號)는 춘당(春塊)이다. 어려서부터 학문 (學問)에 심취(深趣)하여 한학칠서(漢學七書)에 능(能)하였으며 삼촌(三 앓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