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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8 향토 문화총서 @ 돌마 마을지(下) 무덤이 표시꾀어 있음이 특이하다 지도 위쪽에 보이는 태종의 능인 헌 릉(廠|埈), 성춤의 능인 선릉(宣陸), 중종의 능인 정롱(靖陸)을 비롯하여 공주(公王), 꾼(君) 등 왕설의 묘가 가장 많다. 지도에서 확이한 것 중의 하나는주막(酒幕)이 대단히 많이 표시되어 있다는사실이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민간 숙박업소가 번영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작은 저수지에 해당하는 “언 (週)”이란 글자도 자주 보이고 있어 조선 후기에 수리시설이 확충되고 있는모습의 일단을 엿볼수 있다. 그리고가물 때 비가오기를 빌면서 제 사를 지내던 기우제단(祝雨察밸)도 돌마면과 실촌면 2곳에 표시되어 있 다. 한편 지도 위쪽 왼쪽에 ‘땅은광주에 속하지만 백성은 한성부에 속한 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흥미롭다. 그 옆쪽의 성꽂면(聲申面), 북방면(北 方面), 송통띤(松洞面)은 한강괴는 관계없는 지금의 시화호 안쪽에 해당 되는 곳으로서 안산과 남양에 인접해 있었다. 기타 읍치 까래쪽의 경안 역(慶安繹)은 현재 광주시 경안동이 위치한 지역으로서 7개의 속역(屬 購)을 거느린 찰방역(察닮繹)이었다. 2. 탄천유혁의 역사와 돌마 성남지역에는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대 개자연지리적으로사람이식량을채집하기쉬운지역에는주거지가자 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하겠지만 이를 뒷받침 하는 고 고학적 문화유산을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간 성남 지역에는 분당 신도시 개발 당시 조사된 116기의 고인돌을 통해서 성남지역이 선 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나 구석까 시대까지의 역사에 대해서는 확실한증명을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35년의 성남시 역사는 전통의 발굴과 보존보다는 급격한 도시 개발의 시대월 지나왔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많은 유적지까 훼손되었을 양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