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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7일 광주 돌마면 가차곡 율리(廣州 홍馬面 加次용 票里)에 장사지냈 다고하였다.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이원(李原)의 신도비에도선생이 유 배지에서 병으로 사망하였고, 9월에 광주 돌마면 율촌(廣州 증馬面 票 村)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용헌집(容幹集)』 에서는 돌마 의 한자 표기가 꽃馬가 아닌 홍馬로 표기 되어 있음이 다르지만 지리적 위치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다음은 백헌 이경석 선생의 『백헌선생집(白輕先生集)』 에 수록된 시장 (誼狀)에 보면 선생이 76세로 돌아가시자 임금이 예관애뿔官)을 보내 제사 하고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예장(禮慶)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생을 장사지낸곳의위치를광주돌마리(廣州突馬里)라고기록하고있다. 윤증(尹핸)의 문집인 『명재선생유고(明짧先生遺橋)』 에도 쉰증(尹웰) 의 종숙부인 삭녕부군(期寧府君) 윤홍거(尹鴻짧) 묘지명에 ‘광주의 남쪽 돌마촌(廣州南 突馬村)’ 에 장사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이경류(李慶流)의 손자인 이의현의 묘소 위치를 광주 돌마촌(廣州突馬村)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현재의 중앙공원에 있 는 한산 이씨 문→콩의 묘소들이 있는곳을 말한다. 그밖에도 이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수많은 인물들의 묘비푼속에 돌 마(突馬)라는 지맹이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광여도』에 표시된 광주부는 남종면을 제외한 광주시 전체와 남양주 시 와부면 · 조안면, 성남시, 하남시, 서울특별시 강남의 경부고속도로 동쪽, 의왕시, 안산시 성포동 동남쪽, 화성시 매송면의 서쪽에 해당하는 이주 큰 고을이었다. 광주의 읍치는 원래 하남시의 교산동 강골’ 일대 에 있었는데, 1626년(인조4)에 남한산성 안으로 옮겼다. 남한산성은옹성과암문(暗門)까지도자세히 그려져 있으며, 안쪽에는 관아 건물을 구체적으로 그려 넣었다. 한강이 고을 동쪽에서 들어와 북 쪽을 휘감고서쪽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강변에는 여울(懶)과 송파진(松 波律), 삼전도(三田禮) 등의 나루가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는 수십기의 17 돌마지역의 역사와 화 유 」즈 - - 순 앓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