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位) 의인(宜A) 한산이씨(韓山李民)는 목은(救隱) 이색(李橋)의 후손이 다. 1487년(성종 18)에 생(生)하고, 1557년(명종12)에 졸(후)하니 향수(享 壽)는 71세였다. 묘소는 서현동 산 631의 선영하(先瑩下)의 정좌CT坐) 이다. 121 세거 , 성씨와 인물 ·한동열 한효순(韓孝純, 1543∼1621) 휘(譯)는 효순(孝純), 자(字)는 면숙(뺑淑), 호(號)는 월탄(月 擁)이다. 1568년(宣祖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76년(宣祖9) 명경과(明經 科)에 합격하여 승문원(承文院)으로 들어가 한림원(輪林院)으로 천거(薦 學)되고 이어 박사( 博土) 전적(典籍) 퉁으로 출사(出任)하여 많은 요직을 두루 거쳤 다. 1589년(宣祖22) 겨울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윷 다녀오고 영해부사(寧海府使)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王辰樓亂)이 일어나자 군사를 모집하고 성지(城池)를 수리 하며 식량과 마초(馬草)를 비축하는 등 군세(軍勢)를 진작시키자 행궁 (行宮)에 주달(꿇達)되어 초토사(招討便)로 명을 받아 병사(兵使) 박진 (朴쯤)을 도와 대동강 밖의 대적( 大願)을 토별하는 데 힘썼다. 경상우관 찰사(慶尙右觀察便)로 임명되어서는 좌관찰사(左觀察使) 김성일(金誠 一)을 도왔으며, 이듬해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로 승차되어 경상좌 우합도관창사( 慶尙左右合都觀察使)로 임명되었다. 1594년(宣祖27) 병조 참지( 兵暫參知)로 들어가 대사간( 大司課) -대사헌(大司憲) 퉁을 거쳐 병 조참의(兵暫參議)로 경성순검사(京城젠檢使) 및 주사대장(채師大將)을 겸하였으며 아융 r러 화기(火器)를 주조하고 병서( 兵書)를 인판(印版)하는 일까지관장하였다. 1596년(宣祖29) 도체찰사(都體察便) 이원익(李元靈)의 부사(副使)로 임명을받아호남(湖南)으로 내려가각고을의 산천험이(山JI[險易)와산 물(塵物)등을두루살펴 대비하였다가웅변(應變)하였으며 얼마후자헌 대부(資憲大夫)로 올라 삼도주사(三道판師)의 책임을 명령 받고 내려가 좋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