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悟禮書院 院庭碑 銘序(오례서원 원정비 명서) 구름 위에 높이 솟은 梅峯(매봉)은 節義(절의)를 象徵(상징)하여 뒤에서 護衛(호위)하고 堪樂 雄山(감악 웅산)은 千古 地靈(천고 지령)을 藏(장)하여 앞에서 侍立(시립)하니 이 書院(서원)에 萬古忠節(만고충절)의 義魂(의혼)이 머무르고 이 院(원)에 錄(록)하여 人脈 俊英(인맥 준영)이 連綿(연면)하다. 朝鮮朝(조선조) 五百 年(오백 년) 忠 中 第一(충 중 제일)인 六臣(육신) 白村 先生(백촌 선생)의 裔孫(예손)인 金寧 金氏(김녕 김씨)의 世居地(세거지) 居昌(거창) 悟禮洞(오례동)의 이 悟禮書院(오례서원)에는 白村(백촌) 金先生(김선생)을 主壁(주벽)으로 하여 如甁齋(여병재) 金先生(김선생), 德隱(덕은) 金先生(김선생), 松菴(송암) 金先生(김선생)을 配享(배향)하여 萬人(만인)이 敬拜(경배)한다. 白村 先生(백촌 선생)의 諱(휘)는 文起(문기)[初諱(초 휘) 孝起(효기)], 字(자)는 汝恭(여공), 號(호)는 白村(백촌), 諡(시)는 忠毅(충의), 本(본)은 金寧(김녕)이니 新羅(신라) 敬順大王(경순대왕)의 後(후)라. 孝行(효행)이 卓異(탁이)하고 器宇(기우)가 宏大(굉대)하며 王朝實錄(왕조실록)에 性通違善言語疾惡(성통위선언어질오)요 雖儒名弓文武兼全(수유명궁문무겸전)이라 하니 當代 第一(당대 제일)의 人物(인물)이라. 世宗 八 年(세종 팔 년) 文科及第(문과급제)한 후 翰林(한림)으로 莁仕(무사)하여 世宗(세종) 文宗(문종) 端宗(단종)의 사랑을 받아 史官(사관) 言官(언관) 中央(중앙) 地方(지방) 文武(문무) 各 官(각 관)을 거쳐 咸吉 監司(함길 감사)로서 儒敎(유교)로 治道 愛民(치도 애민)하고 屯田(둔전) 成功(성공)으로 文宗(문종)의 親製褒諭(친제포유)를 받았고, 刑曹參判(형조참판)으로 歸京(귀경)하매道民(도민)이 生祠(생사)를 모셨다 하니 그 善政(선정)을 짐작케 한다. 癸酉政變(계유정변)에 反首陽派(반수양파)로 몰렸으나 李澄玉(이징옥)의 亂(난)에 咸吉道節制使(함길도절제사)로 出將(출장)하여危機(위기)를 免(면)하고 女眞(여진) 侵入(침입)을 막은功勳(공훈) 또한 至大(지대)하였다. 世祖(세조)가 簒位(찬위)하자 工曹判書(공조판서)兼(겸) 三軍都鎭撫(삼군도진무)로 成三問(성삼문) 朴彭年(박팽년) 先生(선생)과 端宗復位(단종복위)를 謀議(모의)할새, 三雲劒(삼운검)인成勝(성승) 兪應孚(유응부) 朴靖(박정) 將軍(장군)으로 하여금 世祖(세조)를 殺害(살해)하는 일을 分擔(분담)시키고 擧事(거사)의 成敗(성패)를 決定(결정)할 軍 動員(군 동원)을 스스로 맡아 反對勢力(반대세력)을 모두 制壓(제압)키로 하였다. 이 謀議者 中(모의자 중) 唯一(유일)한 現職判書(현직판서)요, 兵力(병력) 動員能力者(동원능력자)이며, 通達(통달) 能辯(능변) 疾惡(질오)의 尊敬(존경)받는性品(성품)으로 미루어 이 分擔(분담)에서先生(선생)의 領導的(영도적) 位相(위상)을 알 수 있다. 謀議(모의)가 發覺(발각)된 後(후) 史上(사상) 類例(유례)없는 酷毒(혹독)한 拷問(고문)을 끝내 이기고 鞫問(국문)을 拒否(거부) 緘口不服(함구불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