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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이자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주고 시위 군중을 주도해 갔지만 일경의 무자비한 강압으로 시위 군중은 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날의 기개와 우렁찬 함성은 민족정기의 표출로 우리 민족 정신사에 흐르고 있으니 일의 성패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공은 며칠 후에 숙부와 외숙부와 함께 일경에 피체돼 일군 양주 헌병분견소에 이송되어 5월 5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공이 피체된 지 4개월 만에 형기를 마치고 7월 말에 귀가하였는데 옥중에서 괴질로 고생하던 중이었으므로 가족에까지 전염되어 모두가 그 병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 후 공은 화옹을 존모하면서 남들에게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일로 평생을 보냈다. 공은 병신 11월 13일에 출생하여 무오 7월 26일에 별세하니 수가 83이다. 공이 하세한 지 20주년 무인에 정부에서는 공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리어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는 능성구씨의 딸 유덕이니 부덕을 갖추었다. 시모 박씨가 중풍으로 누워있으매 정성으로 간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