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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森泰二郞),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이사다나카(田中淸次郞) 등을 총살로 응징하였다. 그래서 일본의 가혹한 고문과 옥고를 당하였지만 대한의 장부로서 비굴함이 없이 꿋꿋하게 지조를 지키다가 다음해 삼월이십육일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일천구백육십이년 우리나라 최고의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순흥인 진사 안태훈(安泰勳)의 장자로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하여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주하고 자택에서 아홉 해 동안 한학을배웠다. 당시 안진사가 초빙한 숙사는 화서문인 성재 류중교의 제자 후조 고석노(後凋高錫魯)인데, 후에 임시정부 주석이 된 백범 김구(金九)와 독립운동에 투신한 김유술(金裕述)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이에 안중근 의사 순국 일백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장학회는 안의사를 추모하며 그 단지혈맹정신과 위업을 기리고 옥중 유문(遺文)을 교훈으로 삼고자 설죽 장세진(雪竹 張世鎭)선생으로부터 안의사의 유묵을 받아 돌에 새겨 화서 이항로 선생의 고장 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