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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년이면 아흔이 되시는 아버님을 모시고 삽니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아흔이면 만만치 않은 연세십니다. 하지만 우리 부친께서 아직 그야말로 쌩쌩하십니다. 놀라울 정도로 활동도 많으시고. 문제는 우리 아버지의 못 말리는 모교사랑입니다. 안암동에 있는 말 많고 시끄러운 학교 53학번이신데 아직도 동문회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 어나십니다. 실제로 1년에 몇 번은 동문회 모임으로 출타를 하십니다. 때로는 약주도 거나해서 밤늦은 시간에 들어오실 때도 있습니다. 제가 가끔 핀잔을 드리기도 합니다. “아버지 그만하면 되셨어요. 아버지 연세되는 선배들이 그렇게 행사에 자주 나가시면 후배들이 불편해 해요. 그리고 이제 아버지 연세를 생각하세요“ 아버지는 아랑곳 하지 않으십니다. “인마, 니가 뭘 안다고” 약주기운에 불콰하신 얼굴에 이 양반이 아흔 앞두신 분 맞나 싶습니다. 제가 우리 대학의소리동문회에서 일을 본지가 어언 7년째입니다. 가끔 전임회장단으로 구성된 고문단 선배님들과의 식사자리가 있을 때 가보면 의례히 하시 는 말씀이 “이제 나이 먹은 선배들 그만 불러. 오면 오는 거고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젊은 후배들이 끌고 가 . 그래야 해”하십 니다. 그 말도 또한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왠지 살짝 서운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일 년에 우리 동문회가 주관하는 행사가 몇 건 있습니다. 그때 그때 마다 동문들 한 사람이라도 더 참석하게 하려고 나름 애를 씁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하는 분도 있지만 그게 그리 초연하기가 어렵습니다. 전화 돌리고 문자하고 카톡하고 읍소하듯 공을 들입니다. 매년 연말 정기총회 준비할 때, 특히 2부 행사에는 공중파 방송국 연말 특집쇼 기획하 듯 머리를 싸맵니 다. 언젠가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명절 때 고향집 내려가는데 고향집에서 준비하는 음식이 뭔지 그거 확인하고 가냐? 명절에 고향집에서 준비하고 있는 이벤트가 뭔지 그게 그리 중요하냐? 그게 맘에 안 들면 안 내려가냐? 다들 그런 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잘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그리 가 볍지만은 않습니 다. 대학의소리 동문회 웹 매거진 두 번째 호를 준비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요? 시간에 흐름 속에서 더욱 더 그리워지는 우리 ‘대학의소리방송국’입니다. 사람, 하나하나. 기억, 하나하나. 묵은 된장에 오래된 포도주 같은... ❙ 총동문회장 칼럼 Webzine V.O.U VOU총동문회장 박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