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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오산리 조병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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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하고 우애돈독하였다. 인와공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경술국치를 당하매 비분강개하여 효위백행지원이오, 충위보국지본이라. 제벽하고 조국광복을 위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구국진력하던 중 기미년 3.1운동이 봉기하자 혈명동지인 조재복 홍종현 조주생 제공과 영천장날에 결사의거하여 몸소 제작한 태극기를 고양하며 대한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니 시장군중이 대거 동참하여 국권회복을 촉성하니 그때가 1919년 4월 12일이다. 즉일에 투옥되어 극악무도한 고문과 태형 90의 실형에 유혈이 낭자한 사경의 몸으로 출옥하였다. 54세인 을유년에 조국광복을 환호하였으나 태장여독으로 신고하기를 수년이 지난 1951년 경인 6월 초 10일 우리의 적은 왜놈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손세하니 향년 59세이며 오산리 평산의 선영 뒤 갑좌원에 예장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의 독립유공을 기리어 1992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대통령표창과 2001년 8월 13일 국가유공자 증서를 추서하였다. 공의 항왜사적은 판결문과 국가보훈처 발행 독립유공자 공훈록과 한국독립운동가 유족회 발행 건국훈장 수훈자 공훈록에 실려있으며 2005년 5월 17일 영천 항일독립운동 선양사업회에서 국가보훈처와 영천시의 보조금과 시민의 헌금으로 영천 화북면 오동공원에 공과 홍종현 애국지사의 추모비를 세워 항왜정신을 길이 이어가고 있다. 배 유인 능성구씨는 화서의 장녀로 천성이 현숙하고 사덕을 겸비하여 군자의 의지에 순종하였다. 1986년 병인 6월 초6일에 졸하니 공의 묘소와 쌍분으로 묘좌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니 남은 장환 중환 준환이며 서는 양산 이종순이다. 장환은 생 2남이니 희영 희웅이며 중환은 생 3남 2녀이니 남은 규정 규학 규도이며 서는 이의덕 이재창이다. 준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