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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제는 충남 보령(保寧) 주산(珠山) 사람이다. 김동삼(金東三)이 소백채구(小白菜溝)에 백서농장(白西農庄)을 설치하고 민족교육을 위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치하였을 때에 총무를 맡아 양규열(梁圭烈)·이근호(李根澔)·채 찬(蔡燦 : 白狂雲) 등과 함께 이곳에서 활약하였다. 한편, 1920년 3월 상해 임시정부의 명령에 의하여 한족회 및 군정부의 여 준(呂準)등 27명이 모인 가운데 회의를 한 결과 한족회의 조직을 변경할 때에 실업과장(實業課長)에 임명되었으며 또한 상무사장(商務司長)으로도 활약하였다. 1921년 1월에는 왕청현(汪淸縣)에서 대한독립군정서(大韓獨立軍政署)에 가입하여 강철구(姜 求) 등과 함께 충남 부여지방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1923년 3월 3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는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1925년에 정의부가 조직되자 박정조(朴正祚)·백남준(白南俊)과 함께 재만한인의 생계를 지원하였으며, 또한 1926년 1월 24일에는 고활신(高豁信)·김학선(金學善)·김 탁(金鐸)·오대영(吳大泳) 등과 함께 정의부(正義府)의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27년 4월에는 만주지방으로 이주한 농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김기풍(金基豊)·김진호(金鎭浩)·오동진(吳東振)·김동삼(金東三)·현정경(玄正卿) 등과 함께 농민호조사(農民互助社)를 조직하여 산업상 생산의 증가, 교육발전, 위생과 보건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