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page


270page

태어나셨읍니다. 어려서부터 청렴강직하셨으며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투철하셨읍니다. 1919년 열아홉살의 약관으로 일제의 강압에 항거하여 서울에서의 학업을 중단하고 대전지방의 3.1운동을 주도하시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시니 이 행적은 청사에 기록된 바 있읍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시어 운남성 광무당 군관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셨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시는 등 상해와 만주에서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동하셨읍니다. 1944년 20여년 만에 환국하셨으나 있따른 재난 등으로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셨읍니다. 자애와 위엄으로 저희들을 인도해 주시던 아버님은 1966년 음 2월 28일 향년 66세로 대전에서 돌아가시니 이곳 향리에 모셨읍니다. 여기 아버님 곁에 모신 어머님 은진송씨는 항상 어질고 자상하셨읍니다. 가난과 인경의 연속이였던 망명생활 중에서도 5남 4녀의 자녀를 낳아 훌륭히 키워주시다가 1944년 음 8월 22일 향년 44세로 돌아가셨읍니다. 재취하신 경주피씨 어머님과의 사이에는 1남 1녀를 생육하셨읍니다. 저희 자녀들은 애모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제 짧은 글을 지어 부모님의 덕을 기릴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