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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갔다. 이 참상을 보다 못하여 지우 김직원 지사와 모의 그해 4월 1일 대전시장에서 수천 군중과 더부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 격렬한 시위를 벌리다가 출동한 일본순사 헌병군대가 마구 쏘와대는 총탄에 동지 정대귀 방춘실 외 수명이 순사하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었으며 공은 김공과 같이 주동자로 피체되어 동년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2년 여형을 받았고 그 후 출소하여 일본으로 역 망명하여 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병인년에 귀국 고향인 점촌에서 은둔생활로 생계를 돌보는 중에도 일헌의 감시와 핍박이 극심하여 중국으로 망명하려 했으나 박씨문중에서는 18대종손이며 독자의 몸이라고 만류하여 고향에서 은거 절망의 나날을 보냈다. 천운이 회태하여 을유 양 8월 15일 광복의 기쁨을 보게 되였다. 왜정 36년 학정이 풀리어 방방곡곡에서 만세소리는 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공은 이러한 기쁨을 맞았으나 그간 독립운동하다 피체되어 영어생활에서 모진 고지를 당한 여독으로 고생 신음하다가 1970년 경술 9월 12일 서거하니 점촌 상화봉 오좌에 안장하였다. 초배는 은진송씨요, 계배는 강릉김씨니 모두 합부하였다. 자는 5남 1녀니 희준과 희증 희균 희장 희돈이요, 서는 오재영이고 손은 봉기 외 10종 형제니 내외손 남녀 29인이나 이에 다 기록할 수 없다. 나의 지우 희준보 그 선친의 현창 표석을 국가에서 세움에 그 갈문을 부탁하기에 내가 공을 승안한 바와 그 사략을 쓰고 나라에서 공에게 추서한 건국훈장 애족장 제268호 훈장을 이에 새기노니 왈 우리나라 자주독립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 대한민국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다음 훈장을 추서함 건국훈장 애족장 1990년 8월 15일 대통령 노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