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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고순진 고예진 선생 추모비 애국지사 고순진 고예진 두 선생은 부친 가선대부 고시청 선생의 장남과 4남으로 흥덕면 송암리 379번지에서 탄생하다. 두 선생의 숭고한 도학과 위국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국내 문인들과 유지들의 발의로 1986년 5월 5일 도지사, 군수, 보훈지청장과 문인 유지 등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7척 두 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 ㅇ 고순진(高舜鎭 1863-1938) 자는 의경(義卿) 호는 만취(晩翠)며 면암 선생의 문인이다. 1906년 면암 의거시 항일투쟁을 호소하고 격문을 인쇄하여 8도에 포고하다. 1914년 무기와 군량미 및 거액의 군자금을 독립의군부에 헌납하다. 1919년 파리장서에 서명하였다. 1973년 10월 3일 성균관 및 전국 유림단 주최로 서울 장충단공원에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를 정부 및 각계의 지원으로 건립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제 567호)이 추서되다. ㅇ 고예진(高禮鎭 1875-1952) 자는 계문(季文) 호는 송천(松川)이니 면암 수남 두선생의 문인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족형 고석진 족질 고제만과 3인이 면암 최선생을 방문 호남의거를 헌책하고 1906년 윤4월 면암 선생이 정읍 태인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킴에 고석진 김양수 등과 함께 의병 궐기의 토왜 격문을 인쇄하여 8도에 전파하고 순창 전투에서 의병대장 면암 등 12의사가 왜군에 붙잡혀 송천 선생은 전주 감옥에서 수개월의 옥고를 치르다 1914년 광무황제로부터 독립의군무 참모관의 칙명을 받고 전국에 독립사상을 고취하면서 군자금을 모금하여 의사 곽경열을 통하여 중국 상해 임시 정부에 군자금을 헌납하다. 33인 뒤이은 12지사 1919년 3월 5일 고예진 고석진 선생을 비롯 12명이 선언장서에 연서하여 총독 장고천과 직접 담판하고 종로네거리에서 총독에게 보낸 장서 낭독과 만세를 고창하였고 1919년 프랑스 파리에 만국평화 회의가 개최됨에 일제 침략을 규탄하고 전국 유림대표 곽종석 등 137 인연서로 대한독립 청원서를 작성하여 심산 김창숙을 밀사로 상해 임시정부에 파견하여 임정 김규식으로 하여금 프랑스 파리 세계평화회의에 제출케하다. 1987년 8월 15일 독립기념관 개관과 함께 고종황제의 칙명장이 상설 전시되다. 건국훈장 애국장(12호)이 추서되고 저서에 송천집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