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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 가례동 유허비 박씨는 신라의 혈통이다. 우리나라를 크게 열어 백성에게 은덕을 베풀었다. 그 전해진 복이 불어나 대대로 나라의 명성있는 집안이 되었습니다. 은산에 봉해진 후손은 그 숫자가 더울 많다. 고려 말에 충숙공 송은선생 천익이 있었는데, 굳은 절개가 빼어나 포은 목은등 여러 현인과 명성을 나란히 하였다. 그 아들 졸당옹 총은 조선조에 벼슬하였는데, 정도를 지키다 쫓겨나 삼기에 은거하였다. 자손이 벼슬을 이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병마공 운에 이르러 처음으로 의춘의 가례동에 살았는데, 허씨집안에 장가를 들어 이 때무에 우거하였다. 허씨는 이름난 관리와 나이 많으면서 덕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퇴도 이선생 또한 허씨에게 장가들어 왕래하며 사귀었는데, 바위위에 '가례동천' 네 큰 글자를 썼다. 공이 사는 곳 앞쪽에는 이름난 정자와 누대가 있어 거닐고 읊조리며 노년을 보냈다. 호를 수성재라 하였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남명 조선생이 시를 지어 곡하기를 "오각산 세 봉우리 아래, 그대의 빛나는 집안있었네. 이웃집에선 방아노래 하지 않는데, 쓸쓸히 산허리에 구름이 걸려있네."라고 하였다. 대가 그 가문의 성대함을 찬미하고 마을에 덕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탄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