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page

박한주는 세조4년(1459) 경남 밀양부 풍각현 흑석리 차산에서 태어나 자(字) 는 천지(天支)이며 호는 오졸재, 본관은 밀성이다.충직 강직한 기질을 가져 한평 생 청렴과 충간(忠諫)으로 일관하다 멸 사봉공한 그는 무오·갑자사화의 소용돌 이 속에서 처형을 당하고 일가족 모두 일 찍 잃은 데다 가산마저 몰수돼 후세에 알 려진것이많지않다. 16세때한원당김굉필과함께점필재문 하에서학문을익혀성종14년25세에생원 진사과에 합격하고 2년 후 별시문과에 합 격해전생서직장으로관직에첫발을내디 뎠다.불의에대해서는추상같은기개로직 간한오졸재에대한일화가전해온다. 연산군3년(1497)폭정으로실덕이많아 지자 “이제 밖으로는 왜적이 변방을 침략 하고 안으로는 도성 안에 도적이 백성을 살상하는 이때 문소전·연은전(文昭殿·延 恩殿)제왕릉및문묘에단한번의친제(親 祭)도 않으면서 주 연으로인정전앞에 가무음곡이 끊이질 않으니감히온당치 못합니다고 간하고 용봉장(龍鳳帳)은 국가의 큰 잔치나 명나라사신을맞을 때 쓰는 것인데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라고진언했다.이에발끈한연산군이용봉 장(龍鳳帳)이 네 것이냐고 하자 “이 장막 (帳幕)은 모든 백성의 힘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신민(臣民)의 장막이랄 수 있다며 어찌 군왕의 개인 소유일 수 있습니까”라 고 곧게 말했다고 했다.이는 그의 나이 39 세 때 사간원 헌납 겸 춘추관기주로 있을 때의일이였다.임금을직접대면하고연락 (宴樂)의 부당함을 극간한 오졸재의 의연 한기상을엿볼수있다. 성품이 깨끗했던 오졸재는 의(義)가 아 니면 남의 물건을 터럭만큼도 취하지 않 았다.그래서평생동안살집을마련하지 못했다고 그의 청렴결백 을 명신록은 전 해주고 있다. 오졸재의 가족은 사화로 인 해 유배되었고 셋째·넷째 동생은 일찍 죽 어 직계후손은 없고 방손들만이 유지를 받들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오졸재 의 이름은 세월 속에 묻혀버렸고 그의 유 품또한하나도남아있지않다. 다만선생을봉양하는서원세곳과묘 소만이 어렴풋하게 남아 우리들에게 다 가와 있을 뿐이다. 마산에서 남해고속도 로를타고진주쪽으로가다함안IC를빠 지자 말자 우측 시골길을 따라가면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선왕마을 뒤편야 산언덕에오졸재의묘가부인광주안씨 묘와 함께 나란히 있다. 사화 때 참화를 당하고부인의친가산에묻혔다. 5백 여 년이 흐른 지난 1987년 방손 들이 뜻을 모아 봉분을 새로 다듬고 추 도비와 재실을 건립해 선생의 정신을 살리고있다. 경남지방유형문화재 제79호로 지정되 어있는밀양시부북면후사포리예림서원 에서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 두 차례 제향 되고있는데이곳에는오졸재의스승인조 선거유점필재김종직을주향하고송계신 계성도 함께 배향돼 있다. 이외에 대구 남 강서원과 경북 청도군 풍각면 차산서원에 서도 배향돼 있다. 오졸재는 형조정랑· 예천군수등많은관직을지내면서도그 의 치정(治政)은 오로지 돈본선속(敦本 善俗; 근본을 두텁게 하고 민속을 어질 게 한다)의 도리를 장려하는데 최우선 을두었다만사를친히돌아보고관아벼 슬아치들의 농간을 물리쳤으며 조정과 판결이공명정대해인근이웃의많은송 사와 방백(方伯: 관찰사)·군현들의 난 처한 일도 선생에게로 몰렸다. 사간원 정언으로있을때성종대왕의유교를존 중해 문교 교정치(文敎 敎政治)에 주력 하자 오졸재는 이재야 성군(聖君)을 만 났다며항상정신을가다듬고임금앞에 나아가세상사를숨김없이다말하자임 금님이 크게 기뻐하며 “사투리 정언(正 言:사투리로 바른말을 말함)이 왔구나” 하며친찬해주었다고했다. 연산 군조 위험하고 어지러운 시절 오 졸재는 사복제조 노사신이 개인감정에 치우쳐인사처리를하자이를지적해신 하가 권한을 농간하는 폐단이 이제부터 싹틀 것이라 간하고 임사홍 등의 간사한 행 위 를 논 하 기 도 해 훗 날 이 두 간 신 의 모 함 을 입 게 됐 다 오 졸 재 는 연 산 군 4년 (1 498) 7월 40세로 13년간의 짧은 관직생 활을 마감했다. 무오사화로 점필재의 문 도로서 붕당(朋黨)을 만들어 서로의 명 예를 칭송하고 국정을 비평하고 세상일 을 비방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호남 낙안군으로 유배됐기 때문이다. 유배 중 에도 가르침에 게을리 하지 않아 최산두 같은 명사가 그의 문하에서 나오기도 해 “호남 학문의 근원이 모두 그에게서 나 왔다”는 칭송을 들었다. 유배 중 갑자사 화를 맞아 형장에서도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친구들과 작별하기를 “공들은 잘 있 게 오 늘 이 내 가 죽 을 때 일 세 ” 라 며 의 연함을보였다.사후13년후인중종12년 (1517) 응교 조광조, 부제학 김쟁 등의 장계로승정원도승지에추증되고133년 후인 인조15년(1637) 예림서원에 봉안 됐다선생의불의에굽히지않는대쪽같 은 청백리 정신과 직언충간(直言忠諫) 으로오히려자신의모든것을멸해직계 후손조차 없으나 그 기개는 아직도 귓전 을 울 리 는 듯 생 생 하다 . 밀양지 인물 편에 수록된 박한주의 기 록 은 점 필 재 의 문 인 , 성 종 때 문 과 정 언 등 을 엮 임 하 면 서 성 종 의 문 치 에 비 찬(裨贊)함이 많았는데 국왕으로부터 “사투리 정언(正言)”이란 별명을 들으 면서 지우(知遇)를 입었다. 창녕현감 을 지 내 면 서 혜 정 ( 惠 政 ) 이 많 아 치 행 제일로 뽑히었다. 연산군 때 사간원 헌 납이 되어 난정을 극간하다가 간신들 의 미움을 사고 예천군수로 좌천되었 다. 무오사화 때 점필재의 문도라 하여 벽동으로 유배되고 낙안으로 이배(移 配)되었다가 다시 갑자사화가 일어나 자 서울로 압송되어 여러 명현들과 형 을 당 하 였 다 . 공 은 어 릴 때 부 터 영 오 (穎悟)장중하였는데 성장함에 강개 (慷慨)히 큰 뜻을 품고 독지 역행하였 으며 문장 기절이 남달리 특출하였다. 중종반정 후 도승지로 추증되었다고 되어있다. 충직강직한기질한평생청렴과충간(忠諫)으로 일관 박씨(朴氏)청백리역사기행(淸白吏歷史紀行) 박 희 학 븣숭덕전前참봉 4.오졸재(汚拙齋)박한주(朴漢柱) (1459~1504) 2018년4월30일 월요일 11 (제136호) 독자마당 東苑 朴 鎭 錫 일반적으로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 의 조건은 바로 건강한 노동에서 창출 된다고 하는데, 그 첫째는 자기 좋아 하는 자유로운 노동(勞動)이며, 두 번 째는 식욕을 돋우고, 깊고 조용한 잠 을 자게 해주는 육체노동일 것이다. 사실 육체노동은 모든 사람들의 의무 이자 행복인 것이다. 이 세상에 번뇌 가 없는 낙원과 같은 생활이나 우리가 동 경 해 마 지 않 는 호 화 로 운 생 활 이 매 력적인 것은 틀림없지만, 양쪽 모두 어리석고 부자연스러운 것임을 부인 할 수 없 을 것 이 다 . 왜 냐 하 면 쾌 락 만 있는 곳에는 결코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없기때문이다. 어쩌다가 일하는 틈틈이 쉬는 짧은 휴식만이 진정으로 즐겁고 행복한 감 정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기쁨이 절대적으 로 필요하다. 우리의 정신은 물론 육체 적으로도 건강과 활력을 유지해 나가 기 위 해 서 는 기 쁨 이 필 요 한 것 이 다 . 그러므로 작은 일을 통해서라도 기 쁨을 갖기위해서는 성실한 노력이 필 요하다고생각된다. 그러나 우리가 현 명하다면 영속적인 기쁨은 언제라도 얻을 수 있으며,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참된 기쁨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자책 이나 후회가 따르지 않는 기쁨을 찾아 야한다. 이 세상의 기쁨에는 우리의 선택과 는 관계없이 자책과 후회의 감정이 따 르게마련이다. 그러므로 기쁨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올바르게 삶을 살면 기쁨은 기 적 처 럼 찾 아 오 는 신 기 루 와 같 은 것 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 고비용이들지않는필요에따른기쁨 이최상의행복이라고말할수있을것 이다. 만일,우리들의 마음 속에행복이깃 들어 있다면 세상은 온통 환한 빛으로 빛날것이다. 그 빛을 따라가면 늘 행복의 길을 걸 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 이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 로느끼는소중한빛과같은감정인것 이다. 일찍이 19세기 말 경 스위스의 작가 인 “칼 힐티”(Karl Hilty : 1833 ~ 190 9)는 자신의 삶 속에서 불행에서 벗어 나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작은 기쁨을 위하여」라는 시를 통해 서다음과같이노래한바 있었다. 『기 뻐하라 /나의 어두운 마음이여 /중략 / 오늘은 세상이 밝은 빛으로 아름답 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 나는 이 넓 고 푸 른 초 원 의 언 덕 에 서 / 이 미 많은 괴로움을 벗었다/이슬이 풀잎에 서 빛으로 반짝인다 / 찬란한 아침 햇 살을 받고 / 저 투명하게 푸른 하늘에 는 / 알 프 스 융 프 라 우 의 흰 눈 이 선 명 하다 / 중략 / 찬란한 여름의 환희가 / 봄의광풍을몰아내고달려온다』 본래 사람은 누구나 즐겁게 살 권리 가 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즐겁 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는 아무런 잘못 이 없다. 그러면 이 인격적 사귐의 행 복은 무엇인가. 한마디로말해서사랑 과 봉사인 것이다. 참다운 사랑 이상 의 행복이 어찌 있겠는가? 이웃과 사 회를위한봉사의생활보다더값진삶 의 내용이 무엇이겠는가? 조그만 일 에서부터 사랑을 느끼고 행복을 배우 는 습성, 이것은 곧 행복으로 가는 인 생의 지름길이다. 하늘은스스로돕는 자를 돕는다. 행복을 찾아 바르게 사 는 사람에게는 행복은 절대 비껴가지 않는다. 일해서 버는 기쁨, 노력해서 거둬지는 결실의 기쁨에서 진정한 행 복을찾아야하겠다. 기독교 사상을 처음 정리한 “사도 바울”(Saint Paul : ? ~ A.D. 67?)은 믿 음 , 소 망 , 사 랑 이 셋 은 항 상 있 을 것 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 했다. 지성과 믿음의 진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는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의지와 희망, 믿음의 가치가 바람직스 럽다는 사실도 재론의 여지가 없겠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 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심리학 적으로 보면 감정(感情)과 예술(藝 術)과 아름다움이 그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생활을 좌우하는 정서적 비중이 막중하며, 그것은 사랑 에 의해 아름다움을 창조해 가기 때문 이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추함 과 미움으로 변한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모든 대상과 세계는 아름다움 으로 가득 차는 법이다. 내 아들 딸들 이 다른 어떤 어린이와 청소년보다도 귀하게 보이는 것은 사랑이 잠재해 있 기때문이다. 따라서 진실한 사랑은 자신을 목적 으로 삼지 않는다. 이때 우리가 조심해 야 하는 것은 자신과 자신이 지니고 있 는 인생의 가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 다는것이다.나의행복이나출세,명예 가 목적일 수는 없어도 내가 지니고 있 는 진실이나 삶의 가치는 지켜지며 때 로는그자체가목적일수도 있다. 물론 자신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온 천 하 를 주 고 도 바 꿀 수 없 는 것 이 자신의 생명(生命)과 인격(人格)이 다. 그러나 그 자신의 생명과 인격보 다도더높고귀한것을사랑하기위해 자신을바칠수있다면그보다더귀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양 초가 빛을 위해 불타야하며, 한 알의 밀이썩어서열매를맺는것과같은삶 의태도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면 인간은 자 신이 목적이어서 살 때는 참다운 삶을 갖지못한다. 자신보다 더 영원하고 고귀한 것을 사랑하며, 그 사명(使命)을 실천(實 踐)하며 사는 사람이 진실로 뜻있는 삶을 살도록 되어 있다. 종교적 신앙 은 언제나 고귀한 사명을 위해 자신을 바치려는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 랑의 극치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 되어진다. 우 리 가 할 수 있 는 사 랑 과 사 랑 의 열 매는 최후의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 며, 하루하루 삶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한 시간 한 시 간을 사랑 속에 살며, 한 사람 한 사람 을 깊 은 사 랑 으 로 대 해 가 는 것 이 진 정 으로 가치(價値) 있는 삶이라고 믿어 진다. ※필자 연락처 :010-5274-9885,E- mail:dong-wonp@hanmail.net 행복(幸福)한사람들의삶에대한열정(熱情)과사랑은어떠 한가 -자기자신보다더귀중한것은없으며,온천하를주고도바꿀수없 는 것이 자신의 생명(生命)과 인격(人格)이지만 자신의 생명과 인격보 다 더욱 높고 귀한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칠 수 있다면,이보 다더귀한삶이어디있겠는가?우리가할수있는사랑과사랑의열매 는 최후의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닌바,이것은 일상의 삶 속에서 발견되 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은 사랑으로 대해 가는 것이 참되고가치(價値)있는인생(人生)이며,삶이라고할수있어- 븡신라오릉보존회(박씨대종친회) 수원시지부상임고문 븡종친회보븮라정븯발행인겸편집인 븡본보논설위원 한 나라의 정치는 훌륭한 임금에 어 진 신하가 뜻을 합하여 정성껏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일할 때에 선치(善治) 가 이룩됩니다. 세종대왕 같은 임금에 뛰어난 청백리 신하들이 정성껏 나라 를 위해서 일한 결과, 조선 초기 나라 다운 나라의 모습을 보였던 시기가 바 로 그때였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정조 대 왕 과 다 산 처 럼 탁 월 한 신 하 가 뜻 을 모아 정성스럽게 백성들을 위한 일을 했기 때문에 문예부흥기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의 민본(民本)의 세상이 도 래할수있었습니다. 다산의 글 「인재책(人才策)」이라는 논문은 정조가 인재(人才)를 제대로 발 탁하는일에얼마나많은관심을지니고 그의실행을위해얼마나많은노력을기 울였었던가를알아볼수있으며,정조의 관심사인인재등용정책에다산은또얼 마나뛰어난계책으로올바른인재가등 용될 수 있도록 정조를 도와주었던가를 정확히알아볼수있습니다.임금정조가 묻고신하다산이답하는인재등용대책 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의 현실은 인재 등용대책이과연제대로세워져실행되 고있는가를점검해보고싶습니다. 현재의 정부가 어떻게 해서 탄생한 정권입니까. 분노한 국민들이 높이 들 었던 촛불의 힘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 어 섰 다 는 것 은 모 두 가 다 알 고 있 는 사 실입니다. 이런 정권이 성공하지 않고 는 우 리 의 미 래 는 제 대 로 전 개 될 희 망 이 없습니다. 온갖 정성과 지혜를 모두 짜내서 반드시 성공한 정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그러려면 그 첫 번째가 올 바른 인재등용입니다.1년이 다 되어가 는 즈음, 냉정한 성찰로 과연 인재등용 이 올바른 방법으로 이룩되었는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정조가 말합니 다. “인재의 등용은 각기 제자리를 차 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려면 치우 침이 없어야 하고(無偏),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無私). 그렇다면 오늘 현 실을 보자. 치우쳤는가. 치우치지 않았 는가. 사사로웠 는가. 사사롭지 않았는가. 인재를 등용하는 도리에 지 금처럼 치우쳤고 또 사사로웠다면 나 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혹 독한자기성찰을열거하였습니다. 당파에 치우친 인사, 지역을 차별한 인재등용, 신분을 철폐하지 못한 인사 란제대로된인사정책이아니라는다산 의 올바른 대책을 음미해야 할 때가 지 금입니다.이념이나코드를따지고자기 진영사람만챙기는인사는붕당의치우 침이요, 출신 지역을 따지는 인사는 지 역의 치우침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기 득권세력이나성별의차이를두는인사 는신분의치우침을벗어나지못한인사 입니다. 정조와 다산의 질문과 답변을 다시 한 번 검토하면서, 현 정부는 인사 정책에 대한 냉정한 성찰을 통해 치우치 거나사(私)가낀인사가있었다면하루 빨리 바로잡아 만인이 공감하는 인재등 용이되기를기대해봅니다. 인사(人事)에는편(偏)과사(私)가없어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마음이 편치 못하다. 마음속에 죄의식이 생기 기 때문이다. 죄의식이란 무엇인가? 자 기가 과거에 한 부정적인 행위들의 정 보가 잠재의식 속에 축적되어 마음을 편하지 못하게 하는 현상이다. 사람들 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기대에 부응하 지 못한 것,실망시킨 것,화를 낸 것,무 시한 것 등이 죄의식이고, 다른 사람들 로부터 받은 상처와 응어리, 恨도 모두 죄의식으로잠재의식에저장되어있다. 부정적 행위들 때문에 생긴 죄의식은 인생에서 汚點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부 정적 행위들을 오점정보(汚點情報)라고 도 한다.잠재의식 속에 죄의식이라는 오 점정보가많이쌓이면어떻게될까?첫째 는 양심이라는 저울이 고장 난다.심하면 작동되지 않고 측정기능도 상실한다. 양 심이 마비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 기에,잘못인데도잘못인줄모르며,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면서도 부끄러움도 모른다.義를모르는사람이되어간다. 둘째는죄책감,강박관념,나쁜생각 등 내적장애가 일어나 고통과 괴로움 의 원인을 만든다. 셋째는 인생이 안 풀리게만든다.많은 사람들이 일이 안 풀리면 운이 나쁘다며 우연의 문제로 돌리는데, 그러나 그것은 우연이 아니 고필연때문에생기는문제다.인생이 안 풀리고 꼬이는 바탕에는 죄의식, 즉오점정보가작용하기때문이다. 恨이 된 체험정보는 살짝 건드리기 만 해 도 폭 발 한 다 . 잠 재 의 식 속 의 나 쁜 죄의식 정보들은 환경적인 상황여건만 맞으면 반복해서 재현되어 동일한 죄 를짓게만들고,나쁜생각과행동을유 발시킨다.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 고, 상대를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며, 옳고 그름도 분별하지 못하게 만든다.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 을 잘 사 랑 하 지 못 하 는 것 도 그 이 유 때 문이다. 상처가 판단기준을 흐려 놓아 상 대 의 마 음 을 정 확 히 볼 수 없 게 만 들 고, 마음이 냉정하기에 상대의 아픔을 이해못하는경우가많기때문이다. 많은사람들이,삶의현실이잠재의식 에 들어 있는 정보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모르고있다.삶이라는인생살이 는 잠재의식 속에 갖고 있는 좋은 정보 와 나쁜 정보에 의해 방향과 항로가 좌 우된다. 의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현 상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코 드 맞는 사람끼리 어울린다는 뜻이다. 같은정보를가진사람끼리는서로끌어 당긴다.나쁘게되려는사람에게는나쁜 생각이 많이 올라온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그 행위정보가 잠재의식으로 입력 되어 나중에 재발 된다. 꾸중 듣고도 못 고치고 재발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 다 . 몸을 청정하게 한다는 것은 무슨 뜻 일까? 잠재의식 속에 있는 죄의식, 즉 오점정보를 소멸시킨다는 뜻이다. 오 점정보를 소멸시켜 몸을 청정하게 하 기 위해서는 반성의 일상화가 중요하 다.반 성은 오점 정보들을 없애 는 프로세스이 다.미워하고 무 시하는마음,시 기와질투,권위 의식, 두려움, 열등감,죄책감, 강박관념, 과욕과 탐욕 등 부정적인 행 위를 하도록 만드는 것들을 마음속에 서뽑아내는절차가바로반성이다. 오점정보가 줄어들거나 삭제되면 어 떤 효과가 생기는가? 내적장애를 일으 키는 죄의식이 줄어들기 때문에 매사 바로 보는 정관(正觀)하는 힘이 생기 고, 제대로 판단하는 정견(正見)의 능 력을 갖게 된다.또 죄의 무게가 줄어들 기에 마비된 양심이 다시 회복된다. 양 심이 회복되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고,부끄러움도 다시 알게 된다.나쁜 정보들이없어지니나쁜생각과행동들 이 재발되지 않고 안 좋았던 삶의 방식 이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義를 아는 사 람이 되니 살아가는 방법,인간관계,운 명,습성 모두가 새롭게 바뀐다.아이디 어, 지혜, 분별력, 좋은 행동이 나오고 사람들과의공감능력도커진다.심장에 저장되어있던부정적인감정이라는나 쁜기억들이소멸되니불안감이나두근 거림 등 심장 스트레스도 완화된다. 인 생이 새롭게 바뀌게 된다. 그래서 반성 을 일상화하면 풀리지 않았던 인생이 확풀리며좋은삶이보장된다. 풀리지않는인생도반성을일상화하면확펴진다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영일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3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