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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김수만은 조인환 의병장의 지시를 받아 수십 명의 동지들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같은 달 20일 경 경기도 양주군 수유리(水踰里)에서 양총 2정을, 같은 군 고랑진(高浪津)에서 총 7정을 탈취하는 등 주로 의병의 병기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피체되어 1909년 11월 30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12卷, 國家報勳處, 1996年, pp.300~301. 註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125・126面 3. 판결문 등 : 찾지 못함 (공훈록에는 ‘1909년 11월 30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 년을 받아 옥고’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찾지 못함) (52). 김수민 1. 약전(略傳) 성 명 (異名) 활동 시기 출 신 거주지 생,몰 참고문헌 및 전 거 활동내용 등 서훈 및 포 상 * 김수민 金秀敏 (守民) 정미장단 1857 ~ 1909 〔양평의병운동사 p.242, 경기도항일독립운 동사 p.89-90, 독립운동사(1), p.152, 양주항일민족운동 사 p.244-247.〕 장단 북면 솔랑리 출 신 의병장, 1907년 11 월 기의하여 부하 300 여 명을 인솔하고 개 성, 양근 등지에서 항 전, 교수형 당함 독립장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