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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2. 공적조서 및 공훈록 <공적조서> <공훈록> 김수만(金壽萬) (1885)~미상 서울 사람이다. 조인환(曺仁煥)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도 양주(楊州)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 11월「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 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러 다시 헤이그 특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강 제로 퇴위시키는 한편「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식민지 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처의 뜻있는 애국지사들 은 의병을 다시 일으켜 무장투쟁을 전개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분투하였다. 김수만은 이 같은 시기에 반일 의병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곧바로 1907년 음력 7월 10일 조인환 의진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조인환 의병장은 일본군을 몰 아내고자 의병을 규합하여 경기도 양평(楊平)의 군아(郡衙)・세무서・우편물취급소 등을 습격 방화하였다. 그리고 부하 의병들을 이끌고 임진강을 근거지로 하여 파주(坡州)・양 주 지방에서 수차례에 걸쳐 일본군을 습격하면서 맹위를 떨치던 의병장이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반일 의병활동이 활발하였는데 대표적인 의병장으로는 조인환을 비롯하여 적 성 출신의 왕회종(王會鍾)・김진묵(金溱默) 등이 각기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활약하였다. 성 명김수만 한 자金壽萬 이 명없음 성 별 남 생년월일(1885) 사망년월일미상 본 적서울 東部 仁昌 龍頭 주 소서울 東部 仁昌 龍頭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1995 훈 격애족장 공적개요 1907年 陰曆 7月 曹仁煥 義兵陣에 가담하여 京畿 楊州郡 일대에서 銃器를 奪取하는 등 활동하다가 被逮되어 懲役 7年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