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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24일에 해당 무리의 두령 김창석(金昌錫)에게 애걸하여 풀려나와 서울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피고의 진술 자백에 증거가 명백하다. 피고 김성완을 「형법대전」 제195조 정사(政事)를 변경하기 위하여 난을 일으킨 자의 형률에 1등급을 감한다는 판결문[文]으로, 동 제137조 2항 유배형의 죄에는 2등급을 감한다는 판결문[文]에 처할 만하나 처음에 협박을 받아 따라다녔고 나중에는 애걸하 여 풀려나와 돌아왔다 하였으니 정황을 살피건대 양심을 엿볼 수 있으므로 본 형률 에 한 등급을 감하여 유배형 7년에 처한다. 융희 원년(1907) 11월 5일 검사 홍용표(洪龍杓) 입회 평리원 재판장 홍종억(洪鍾檍) 판사 박제선(朴齊璿)·이용상(李容相) 주사 이경수(李京壽) (49). 김성화 1. 약전(略傳) 성 명 (異名) 활동 시기 출 신 거주지 생,몰 참고문헌 및 전 거 활동내용 등 서훈및 포 상 * 김성화 金聖化 (性化) 을미양평 미상 ~ 1896. 2 〔양평의병운동사 p.235, 경기도 항일독립 운동사 p.1048, 양평사람들 p.285·122, 성역화 기본계획 p.77, 독립유공자공훈 록(15) p.89-90.〕 지평 사람, 1896년 류인석 (柳麟錫)의 제천의진(堤川 義陣)에 참여하여 포군(砲 軍)으로 활동하면서 항 일투쟁, 가흥전투에서 순국. 애국장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