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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2. 공적조서 및 공훈록 <공적조서> <공훈록> 김백선(金伯善) 미상(1849.3.13.음;편자 주)~1896. 2. 14음(편자 주) 이명 : 百先 김백선은 경기도 지평(砥平 현재 楊平) 출신이다. 원래 기개가 있고 용력이 비상하였으며, 학문은 없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앞 장서는 인물이었다. 일찍이 '갑오동학운동'이 있을 때에는 지평・홍천(洪川) 등지에서 난군들의 약탈로 민간 의 폐해가 매우 큰 것을 보고 앞장서서 감역(監役) 맹영재(孟英在)와 함께 지방 포수를 모 아 조직 훈련하고 난동군들을 쳐서 부근 일대를 편안하게 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 사건의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함을 참지 못하던 중 임금이 강제 삭 발을 당하였다는 소식과 함께 지방에서도 단발령이 시행되고 인심이 크게 설레니 김백선 성 명김백선 한 자金伯善 이 명없음(金百先;편자 주) 성 별 남 생년월일1873(1849;편자 주)-03-13 사망년월일1896-03-27 본 적경기도 양평 靑雲 葛雲 749 주 소京畿 楊平 靑雲 葛雲 749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1991 훈 격애국장 공적개요 1895년 明成皇后가 弑害되고 斷髮令이 내려지자 砥平에서 의병을 일으키 고자 監役 孟英在를 찾아가서 擧義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거절당하고 있을 때 李春永의 권고로 義兵陣에 입대하여 先鋒將이 되어 忠州攻略에 큰 공을 세웠으나 佳興戰鬪에서 援軍을 청하였는데 援兵을 보내지 않은 安承禹 中 軍將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가 靑龍村싸움에서 협동작전이 이루어지지 못 하였음을 義兵大將 柳麟錫으로부터 문책받고 回軍하여 安承禹 中軍將에게 「칼」을 들고 대들어 軍律違反으로 處刑되었으나 의병활동에 있어 남다른 공을 세운 사실이 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