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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 연 번 성명 (이명) 생몰연도출신지본관자호관력 의병활동 (지역) 포상영부 및 기타 21鄭東燮 양평 지평 22鄭永雲1879~1910지평 임행숙 의진‘91 애국장 23鄭永軫 양평 일본순사와 헌병살해 1910년 사형순국 24曺仁煥1881~1909양근 양근 의병장‘62 독립장 25千洛龜 지평致範 원용팔 의진 참모종사 이근원의 문인 26 崔大奎 (趙大奎) 1852~?강하면 해산군인 五衛將 경기도 27崔友錫 지평 丁大武 의진 지평, 홍천, 춘천 1909년 10월 1년 유형 선고받음 28崔太平 양근 남중면 양근의병장 29韓仁秀1881~? 영변 출신, 양평 거주 姜基東 의진 1910년 체포, 징역 2년형 선고받음 5. 맺음말 한말 양평지역에서는 전⦁후기에 걸쳐 항일의병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896년 1월 화 서학파의 유생 이춘영과 안승우가 의기를 들고 포군장 김백선이 군사가 되어 지평의진이 결성된 이래 단양의 장회협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그 후 류인석 의병장 휘하에서도 의진의 핵심으로 활동하였다. 이들 3의병장은 모두 순국하여 민족이 이름으로 현창되고 있다. 또한 이승룡은 양근지역에서 의병을 이끌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하다가 관군의 꼬임에 빠져 역시 순국하였다. 이들 외에도 가흥전투에서 전사한 손덕화⦁김성화⦁김정순 3의병과 손덕화의 뒤를 이어 참전하여 공을 세운 손용문 소년 의병이 있다. 1907년 이후의 후기의병기는 양평지역이 경기지역 의병의 중심지였다. 양평 출신의 권 득수⦁조인환 의병장은 용문산을 근거지로 하여 양평지역은 물론 인근의 여주와 이천, 심 지어는 임진강 지역에까지 진출하여 일본군을 격퇴하다가 순국하였으며, 전기의병기 남한 산성에서 순국한 이승룡의 장자 이연년은 부친의 뜻을 계승하여 창의하여 일본군과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들 외에도 이성서⦁이창준 부자, 안승우의 아 들 안기영 등 대를 이어 항일투쟁을 전개한 이가 많다. 이성서와 박광천⦁정영운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