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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 30) 韓仁秀(1881~?) 평안도 영변 출신으로 양평군 북면 汝物里에 거주하였다. 1909년(당시 29세) 9월 경부 터 姜基東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전군장 金聖西의 소속이 되어 부대원 13명과 함께 무장하고 양주⦁포천⦁영평⦁적성⦁연천 일대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 다. 1910년 초에 체포되어 3월 2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94) 31) 양근 출신 귀순의병 명단 양근 출신 의병으로 후에 일제의 회유와 위협에 귀순한 이들이 있는데, 비록 이들의 마 지막 선택이 불명예롭기는 하지만, 처음 창의한 뜻을 무시할 수는 없어 여기에 게재하고 자 한다. 이 자료는 경기관찰사 李圭恒이 1908년 2월 30일까지 귀순한 양근 출신 의병의 명단을 3월 3일 내부대신 任善準에게 보고한 것으로 「폭도에 관한 편책」에 실려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 高正卜이나 崔太平의 경우처럼 그 후에도 의병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사실들이 확인된다. 이로 보아 귀순자 명단만 제출하고 실제로는 계속 활동한 의병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명단과 주소는 다음과 같다. 95) 94)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 148쪽. 95) 京觀發 제272호 보고서, 경기관찰사 李圭恒 내부대신 任善準 각하(1908년 3월 3일)(『한국독립운동사자 료』 9, 338~343쪽). 이들의 명단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갈성달, 강미력, 강선문, 강인경, 강춘길, 고정복, 구석승, 권성현, 김경노, 김경신, 김광록, 김군명, 김 길이, 김돌이, 김명현, 김명화, 김백봉, 김백선, 김삼복, 김성운, 김여삼, 김역석, 김용길, 김운선, 김원경 , 김유산, 김자근길, 김재용, 김현용, 김홍순, 김익삼, 남치대, 문사준, 문학이, 민성좌, 민철호, 박대남, 박상 복, 박선명, 박성도, 박원경, 박치원, 박흥달, 백덕화, 백오여, 백원경, 백정여, 변화경, 손영심, 신덕산, 신 두승, 신순필, 안개천, 안장소, 안호관, 양준환, 어기연, 여봉오, 염경준, 염학선, 유부길, 유주현, 윤경선, 윤공순, 윤학이, 이득길, 이만기, 이명실, 이벽학, 이석준, 이순경, 이영석, 이영천, 이완겸, 이용운. 이원 명, 이원석, 이윤보, 이일원, 연길, 정인준, 조진구, 최도근, 최도치, 최문흥, 최복길, 최복성, 최영석, 최완 성, 최용선, 최태평, 편완손, 한보여, 함소위, 홍성범, 홍재복, 황선진”(총 10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