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page

469 은 참살한다. 文武 중에 義氣 있는 자는 義兵에 投하라. 65) 또 하나의 격문은 娛濱洞 公山里 주민에게 보냈는데 그 내용은 의병의 대군이 근일 陽根을 습격하려 한다. 고로 妻子家族은 피난하라. 또 화약 탄환을 준비하기 어렵거든 草鞋 및 양식을 준비하라. 66) 라고 하여 의병부대가 곧 양근을 공격할 것을 알리면서 의기 있는 이들의 의병 참여를 요 청하였다. 아울러 주민들에게 화약이나 화승총 또는 짚신이나 양식을 준비해 줄 것도 요 구하였으며,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위대원은 참살할 것임을 경고하였다. 그는 북면에서 의병 귀순자 3명을 잡아 가평군 남면으로 끌고 가 처형하기도 하였으나 1908년 4월 19일 가평수비대장 內藤 중위에 의해 가평군 淸平川의 북쪽 九政里에서 체포되었 다. 67) 그가 이후에 어떻게 탈출했는지는 확인이 안되나 1909년 12월 양주경찰서에 자수 하였다. 68) 7) 孟哲浩 경기도 지평 출신으로 이강년 의진의 좌종사부에 소속되어 의병 활동을 하였다. 69) 8) 閔基熙 양근 출신으로 1907년 7월 초순경(음) 포수를 중심으로 지평군 馬川 大洞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이연년을 의병장에 추대하고 활동하였다. 그는 포수 30여 명을 모아 놓고 “현재 정부 대신의 국가를 그르치는 것이 이처럼 심하여 강토와 생령이 회복할 여지가 없게 되 었으니 의병을 일으켜 일본인을 물리치고 구제도를 회복하려 하니 그대가 두령이 되어 큰 65)「폭도에 관한 편책」 『한국독립운동사자료』10, 143쪽. 66)「폭도에 관한 편책」 『한국독립운동사자료』10, 143쪽. 67) 「폭도에 관한 편책」 『한국독립운동사자료』10, 149, 151쪽. 68) 「폭도에 관한 편책」 『한국독립운동사자료』17, 342~343쪽. 김순덕, 『경기 지방 의병운동 연구』, 한양대 박사학위논문, 2003, 42쪽. 69) 「운강선생창의일록」, 위의 책, 3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