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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 4) 권중식 正尉 출신의 해산군인으로 1907년 8월 楊根에서 해산군인과 산포수로 구성된 의진을 조 직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경기관찰사에게 통첩하기를, “某日에 3천여 군을 거느리고 수원 龍珠寺를 入據할 터이니 백미 2백 석, 北魚 2백 駄, 海藿 1백 立을 豫備等待하라”고 하 였다. 이로 보아 그의 군세를 짐작할 수 있다. 62) 5) 金商基(?~1924) 자는 덕준, 본관은 경주이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에서 출생하여 단양군 적성면 상원곡에 서 살았다. 1907년 이강년과 거의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1911년 양평에서 의진을 해 산하였다. 이후 단양군 매포면 삼곡에서 은거하였다. 63) 6) 김춘수(1874~1952) 양근군 북면 小雪里(고읍면 후평리?) 출신의 유생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64) 본명은 魯 洙이며(일명 丙洙) 본관은 광산이다. 1874년 8월 옥천면 신복리에서 부친 永錫과 모친 고 성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8월 이후 홍천에서 창의하여 200여 명을 인솔하고 양평⦁여주⦁광주 일대 에서 활동하였다. 참모장에 白永基, 종사에 金應西, 李延秊이 있다. 그리고 의병으로 이 춘명⦁李千甫⦁高正卜⦁辛元英 등이 확인된다. 김춘수는 許爲 부하인 金奎植 등과 연계 하여 1907년 12월 13도창의진에 安撫將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2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1908년 4월 양근군의 북면으로 들어가 4월 8일자로 된 두 종류의 격문을 각지에 보냈다. 근처에 倭賊이 있어서 세력이 왕성하다. 그러나 의병이 재거하고 또 청국병도 역 시 動하여 아 국민은 소생할 수 있을 것이다. 화약과 화승을 준비하라. 自衛隊長 62)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 541쪽. 뒤바보, 『의병전』, 「제3기 군대해산한 때」. 63) 구완회, 『한말의 제천의병』, 427쪽. 64)「폭도사편집자료」, 위의 책, 5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