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page

448 천선하도록 할 것을 생각지 않고 어찌도 그렇게 아낌없이 죽이고 말 것이랴. 그 중에는 반드시 곡절이 있을 것이니 兵權이 빼앗길 것을 시기함인가. 평민에게 욕 본 것을 분하게 여겨서인가. 원래 의거라는 것은 적을 토벌하기 위해서이다. 가흥 싸움에 백선이 안승우에게 구원을 청하였는데, 안승우가 군사를 보내지 않아서 백 선이 패배하고 의병들도 사기가 꺾이게 되었으니 그의 분노는 있을 수도 있는 일 이다. 대의를 내세워 원수를 갚으려 하는 자가 적은 토벌하지 않고 먼저 장수를 죽여서 그 방패를 버리고 성을 무너뜨리니 제천의 패전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10) 즉, 적은 토벌하지 않고 장수를 죽였으니 제천 전투의 패전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류인 석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문일민의 『한국독립운동사』에 의하면, 김백선은 가흥전투에서 돌아와 제천 독송정 에서 성을 수축하는 것을 보고 전일 忠州를 탈취하던 즉시 京城을 追攻하였으면 賊窟을 掃淸하였을 것인데 令 에 堤川一隅에서 民家의 醬油와 柴木을 징발하며 農時를 탈하여 城을 築하니 何 日에 적을 섬멸하리오. 無能의 將을 斬하고 自刎하여 兩快함만 不如하다 11) 라고 류인석이 서울 공격을 않고 조그만 제천을 지키고자 성을 수축하는 것을 불만으로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기록에서는 김백선의 행동에 대하여 비판적인 글들도 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의진의 基幹이 되는 포군들의 대장이며 의진의 선봉장인 김백 선을 죽임으로써 의진의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음은 사실이다. 지평 출신의 유학자 금계 이근원은 김백선의 사후에 다음과 같은 만시를 지어 그의 넋을 위로하였다. 이 사람, 그대 어찌 하늘에 떳떳치 아니했겠나 倡義한 용모와 자태 늠늠했거늘 추한 왜적 못 베고 그대 먼저 죽었어도 마속 죽인 孔明도 그 어짐은 알았다오 12) 10) 송상도, 『기려수필』, 국편, 1984, 37~39쪽. 11)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 33쪽. 12) 李根元, 『錦溪集』권2, 詩, 「挽義士金伯善」 ‘斯人不奈秉彛天 倡義聲容凜凜然 醜賊未除身且死 孔明應識馬公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