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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 1) 權善卿 지평출신의 포군으로 지평의병에 참여하였다. 안승우와 동향이라 하여 군량을 배정하는 데 분쟁을 일으킨 바 있다. 4) 2) 金伯善(1873~1896) 1873년(癸酉년) 3월 13일 경기도 砥平(현, 양평군 청운면 갈운리 하갈마을)에서 부친 國 容과 모친 전주이씨의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다. 본명은 道濟이며, 伯先은 그 의 자이다. 5) 김백선은 원래 기개가 있고 용력이 비상하였으며, 학문은 없지만 대의를 위 해서는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인물이었다. 동학농민전쟁이 있을 때에는 監役 孟英在와 함 께 지방 포수를 모아 조직 훈련하고 동학군을 쳐서 부근 일대를 편안하게 하였다. 맹영재 는 이 일로 지평현감이 되었고, 김백선은 절충장군의 첩지를 받았다. 1895년 명성황후시 해 사건의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함을 참지 못하던 중 임금이 강제 삭발을 당하였다는 소 식과 함께 지방에서도 단발령이 시행되자 김백선은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할 것을 결심 하였다. 맹영재를 찾아가서 군사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자고 권하였다. 그러나 맹영재는 “하늘 운수요, 임금의 명이니 순종할 따름이다”라고 반대하였다. 6) 김백선은 자초(自初) 양포(養砲)한 뜻즌 정히 오날을 당하여 쓰려하미라. 이 천만고에 없는 대변을 당하고 임위 거느린 군사가 잇시니 엇지 참아 금수의 꾀에 빠질까부냐. 우 흐로 국수(國讐)를 갑고 아래로 인륜을 보존하미 이졔 한번의 잇시니 원큰대 익히 생각하라 7) 라고 말함에도 맹영재가 뜻을 돌리지 않자, 동학(東學)을 치고 벼슬 어든 거시 네게 영화가 되느냐. 영화로 알거든 하여보라. 4) 박정수,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독립운동사자료집』1, 399쪽. 5) 『廣州金氏 文簡十淸軒葛雲派譜』 참조 6) 『의병사시말』 참조. 7) 『의병사시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