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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 남서쪽으로 흐르고, 또한 남한강이 양평의 북서쪽으로 흘러 북한강과 양수리 부근에서 합 류하여 한강의 본류를 이룬다. 한강은 팔당을 지나 서울을 적신 다음 유유히 황해로 사라 진다. 이처럼 양평은 남⦁북한강이 두 팔로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의 땅이다. 따라서 양평 은 세곡과 목재⦁소금⦁땔감 등을 나르는 중요한 뱃길의 길목에 위치하였다. 육로 역시 강원도 일대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양평지역은 산간지역이 많아 협소한 계곡에 약간의 전답이 있어 농민들은 그곳을 근거로 하여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강가의 나루터에는 상인들이 거주하였다. 계곡의 절경에는 사 족이 거주하였는데, 왕실에 공을 세운 이에게 주는 賜牌地를 받아 낙향한 이도 있고, 은 둔하거나 생업을 찾아 이주한 이들도 있다. 그런 가운데 1375년에 무안박씨가, 1380년에 연안이씨가 가장 먼저 정착하였으며, 1400년대에 교하노씨를 비롯하여 경주최씨⦁밀양박 씨⦁한산이씨⦁안동권씨⦁靈山辛氏⦁양성이씨⦁草溪卞氏⦁문화류씨⦁영해박씨의 순으로 정착하였다. 1500년대에는 결성구씨를 비롯하여 원주이씨⦁동래정씨⦁청주한씨⦁전의이씨 ⦁原州邊氏⦁구원주정씨⦁평양조씨⦁청품김씨⦁남원양씨⦁남평문씨⦁광산김씨⦁청송심씨 ⦁昌原兪氏⦁廣州鄭씨의 순으로 종착하였다. 1600년대에는 순흥안씨를 비롯하여 청해이 씨⦁선산김씨⦁해평윤씨⦁덕수이씨⦁한양조씨⦁경산이씨⦁진주강씨⦁김해김씨⦁달성서씨 ⦁파평윤씨⦁평산신씨⦁고령신씨⦁남양홍씨⦁거창신씨⦁덕수장씨⦁고령박씨⦁인동장씨⦁ 수원백씨⦁여홍민씨⦁해주정씨의 순으로, 1700년대에는 신창맹씨를 비롯하여 광주김씨⦁ 영일정씨⦁광주이씨⦁연안김씨의 순으로, 1800년대에는 벽진이씨를 비롯하여 점점 인구가 늘어났다. 1789년 당시 양근군과 지평현은 5,800호에 인구는 21,900명이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 후인 1907년에는 11,000호에 45,200명으로 증가하였다. 양근과 지평의 호구수를 연대별 로 비교하면 다음 <표 1>과 같다. 위 표로 보아 1가구당 3명 내지 4명 정도 거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의병이 활발했던 1907년의 양평의 인구는 양근이 지평보다 6,800명이 많은 26,000명이며 지평을 포함하면 년도 양근 지평 호구수인구수호구수인구수 1789 3,600 12,200 2,200 9,700 1870 3,845 12,034 ? ? 1899 2,802 ? 2.349 남4,475 1907 6,400 26,000 4,600 19,200 <표 1> 양근과 지평의 호구와 인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