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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어왔다. 안승우는 부득이 芝谷으로 이진하였다가 그날 밤에 酒泉으로 이진하였다. 1월 27 일에는 평창으로 들어가 의병을 모집하고 무기를 수집하였다. 30일에 芳林에서 유진하였 다가 31일에는 진부로 들어갔다. 이처럼 강원도 일대를 이진한 것은 민용호부대와 합세하 기 위해서였으나 민용호는 계속 피하였다. 이는 민용호가 안승우의 포군을 일부 끌어들였 으며, 이를 토대로 독자적으로 활동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로 안승우와 민용호 와의 사이가 벌어졌으며, 후에 제천의병과 민용호 의진간의 연합이 이루어질 수 없는 요 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류인석은 안승우가 이끌고 온 부대가 방림에 유진 중이던 30 일부터 의진에 합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59) 안승우는 서상열⦁이춘영 부대보다 이틀 뒤 인 2월 3일(음, 12월 20일) 영월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미 와 있던 이춘영⦁서상열과 함 께 스승인 柳麟錫을 의병장에 추대하였다. 지평의 단양전투와 그 후 의병이 각지로 흩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류인석은 요동행을 포 기하고 가족을 피신시킨 뒤 李肇承에게 急傳을 띄워 忠州城의 허실을 탐지하게 하였 다. 60) 동시에 이정규에게 내 걸음이 비록 하루 이틀 더디더라도 차마 이러한 것을 보고는 그대로 갈 수가 없다. 그대는 영남으로 가서 급히 敬庵 등 여러 사람을 불러오라. 61) 라고 서상렬 등 영남지역으로 간 의병들을 불러모았다. 또한 류인석은 안승우가 관동지역 에서 민용호의 꼬임에 빠져 의병을 뺏기는 사태를 보고 민모의 속셈은 말할 것도 없이 알 수 있으나, 저놈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니 저놈 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겠는가. 도로 寧越로 머물러서 모든 군사들이 모이기를 기 다림만 같지 못하리라. 62) 라 하면서 제자들을 영월로 모이게 하였다. 이정규는 영남지역에 가서 동지들을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곧바로 영춘을 거쳐 영월로 갔다. 이로 보아 류인석과 이미 영월에서 재회할 것을 약속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류인석은 이정규 외에도 박정수⦁홍선표⦁박주순 등을 각지에 보냈는데 이는 바로 흩어진 의병들을 영월로 집결토록 하기 위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63) 59) 박정수,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 위의 책, 365쪽. 60) 『호서의병사적』 ,「급한 편지」, 33쪽. 61) 이정규, 「종의록」, 위의 책 20쪽. 62) 이정규, 「종의록」, 위의 책 21쪽. 63) 유인석, 「급한 편지」 『호서충의사적』, 제천군문화원, 1994, 5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