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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미 내란을 일으킨 경기도 삭녕군에 모여 주둔한 김진묵(金津黙), 왕회종(王會鍾) 등이 불 러 맞이하자 이를 기회로 융희 원년(1907년) 음력 8월 그 진영으로 갔다. 그 후 다시 각 수백 명의 부하를 거느린 도적 우두머리 김규식(金奎植), 연기우(延起羽), 황순일(黃淳 一), 함재호(咸在浩), 이인영(李鱗榮), 박종한(朴宗漢), 김준수(金俊洙), 이종협(李鍾協), 이홍응(李弘應) 등을 규합하여 군사(君師)의 지위에 올라 작전의 계책을 세우고 이를 각 부장에게 전달하여 각 부장을 지휘했다. 융희 2년(1908) 5월까지 삭녕, 양주, 장단, 철 원, 춘천, 토산 등의 군내에서 십수 차례 토벌군(討伐軍)과 교전하다가 마침내 동년 5월 14일 영평군에서 체포된 자이다. 이 사실은 한국주차헌병대 경성헌병분대장이 피고에 대한 신문서, 평리원 검사의 제1회 신문조서 및 피고가 당 공정에서 공술에 비추어 그 증거가 충분하다. 이를 법률에 비추어 보건대 그 소위가 형법대전 제195조에 해당하므로 동 법조를 적용 처단하고, 압수한 인장 1개는 범죄에 관계된 것이 아니므로 피고에게 돌려줄 것이다. 이 에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본 건에는 검사 삼촌일루(杉村逸樓)가 관여함. (327). 허 열 1. 약전(略傳) 성 명 (異名) 활동 시기 출 신 거주지 생, 몰 참고문헌 및 전 거 활동내용 등 서훈 및 포 상 * 허열 許烈 중기 미상 미상 〔경기도항일독 립운동사 p.72, 여주군사 p.475·499.〕 1906년 심상희와 함께 부하 200여 명으로 여주 에서 창의하여 소모장으 로서, 여주, 연산, 양평, 양주 등지에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