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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2. 공적조서 및 공훈록 <공적조서> <공훈록> 정낙인(鄭樂寅) 미상 의병장으로 강원도 원주(原州)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제는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강박하여 「한일의정서」 및 「한일협약」 을 강제로 체결하여 고문정치를 실시하였다. 이어 1905년 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늑약 (乙巳勒約)」을 체결하는 한편 통감부를 설치하여 그들의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곧바로 군대해 산을 강행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였다. 이러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여 전 국 각처에서는 의병이 속속 봉기하여 일본군과 친일주구들을 처단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정낙인은 이 같은 시기인 「정미7조약(丁未七條約)」 직후 의병들을 모집하여 거병한 후, 의병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일본군에 패해 강원도 원주(原州)로 퇴진한 정봉준 의진 과 합진(合陣)하였다. 정봉준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직후 의병을 일으킨 뒤, 1907년 8월부터 경북 문경(聞慶)・청풍(淸風), 충청도 괴산(槐山)・충주(忠州), 강원도 원주, 경기 도 여주(驪州)・지평(砥平) 등지를 무대로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의병장이었다. 정낙인은 이들 연합의병 400~500명과 함께 활동하다가 1907년 12월 원주 상업산(祥業 성 명정낙인한 자鄭樂寅 이 명없음 성 별 남 생년월일미상사망년월일미상 본 적미상주 소미상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1995 훈 격애족장 공적개요 1907. 12月 江原 原州에서 鄭奉俊의진과 합진하여 500여 명의 군사들과 함께 일본군과 交戰하는 등의 활동 사실이 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