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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註ㆍ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424・495面 ㆍ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79面 ㆍ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1卷 160・217~219・256・285~286面 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1卷 583・585・587・591・593・595面 ㆍ抗日殉國義烈士傳 266面 4-4. 신문보도 등 <2014. 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달의 독립운동가 구연영(具然英) - 을미의병의 쾌거, 구국계몽운동으로 꽃피우다 - 박민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 유교 가문 선생은 1864년(고종 1) 6월 20일 구철조(具哲祖)의 3남으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 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를 춘경(春景)이라 하였다. 선생의 가문은 누대에 걸쳐 대제학 등 문한직을 많이 배출한 집안이었다. 이러한 가풍에서 성장한 선생도 한학에 능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선생은 대한제국 정부에서 일시 관직에 있다가 일제 침략이 자행되자 사직했다고 하는데, 선생이 관직에 있던 사실은 잘 확인되지 않는다. 선생의 집안은 원래 대대로 경기도 광주군 실촌에 세거해 온 유력 가문이었다. 의병활 동 후 선생이 실촌읍 노곡리에 정착했던 사실이나,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의병 가운데는 안옥희(安玉熙) 등 광주 출신의 의병들이 다수 동참했던 정황 등은 모두 이와 같은 지역 적 연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은 18세 때 전의 변씨와 혼인하여 4남을 두었다. 장남은 정서(禎書), 차남은 성서 (聖書), 삼남은 완서(完書), 사남은 종서(鍾書)이다. 장남 정서는 후술하겠지만 선생과 같 은 감리교 전도사가 되어 구국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부자가 함께 순국하였다. 차남 성서 와 사남 종서 역시 목사가 되었다. 자료 부족으로 선생의 유년기와 성장기는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정황으로 보아 일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