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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조국을 위하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1卷, 國家報勳處, 1986年, pp.862~865. 註ㆍ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1卷 167・200~203・207~210・259面 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1卷 178~183・185面 4-1. 묘지 등 관련조사자료 의병 성명이춘영(李春永) 묘의소재지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산 97-2 지형도 및 위치도 참조 문화재지정양평군 향토유적 제 18 호 묘비제 (墓碑題) 義兵將德水李公春永先生之墓 配孺人廷安金氏 祔左 사진참조 묘비명 (墓碑銘) 公의 諱는 春永字는友三號는槐隱이요貫은德水요始祖는 高麗 中郞壯諱敦水府君이시다.高麗朝에서六代를 顯達하시고 十七代 祖諱揚號春塘께서 始朝鮮朝工曹參議요十三代祖諱荇左議政兼大 提學諡文獻號容齋요九代祖諱植吏曹判書兼大提學諡文靖號澤堂 이요六代祖諱箕鎭吏曹判書諡文憲號牧谷이요祖諱載信께서는名 門의後裔로官에不就하시고,아버지諱敏和는東部都事요어머니는 慶州崔氏이며,公은四二0一年戊辰에砥平鄕里에서出生하시였다. 少時부터聽明知慧하며學文에篤實하여度量과氣槪가뛰어나不義 와타협할줄모르는天性이라주위사람들이장차크게될사람이라는말 을하였다.四二0九年國運이否塞하여丙子修護條約이체결되니鄕里 에서片母를 極盡히 모시었다.名門의 後孫이라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으나 不義를 멀리하고 志操를 지키다 交友安承禹와 뜻 을 같이하여 救國準備運動에 착수하여 四二二七年甲午更張과 이듬해乙未事變에 斷髮令이 公布되자 더 참을 수 없어 四二二 八年 砥平 楊東 原州에同志들을糾合하여 同年十一月二十八日 原州郡地正面安昌里에서 全國에서가장먼저救國倡義에깃발을 올리고義兵將이되여原州를 거처 堤川에이르러 李弼熙와 함께 先師柳麟錫을받뜨러大將으로推戴하고公은中軍將이되여忠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