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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고자 해변에 띄웠는데 조그마한 공도 이루지 못하고 먼저 물에 빠지게 되었으니 누가 동 양의 만년을 기약하리오. 일지이수작위선(一枝李樹作爲船) 욕제창생박해변(欲濟蒼生泊海 邊) 촌공말취신선익(寸功末就身先溺) 수산동양약만년(誰算東洋藥萬年).]이은찬은 그 후 1909년 5월 10일 경성 지방 법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그 해 6월 27일 순국하였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미소를 잊지 않아 간수조차 감격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이은찬은 장 례날에는 정동(鄭童)이 와서 원수 갚을 것을 맹세하더니 결국 원수를 만나지 못하여 집에 남은 신좌균의 어린 아이들만 죽였다. 민족의 비극이기는 하였지만 사람들은 그의 의기를 칭송하였으나 그 역시 적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의 사후 이인영도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大統領章)을 추서하였다.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1卷, 國家報勳處, 1986年, pp.840~845. 註ㆍ抗日義兵將列傳(金義煥) 174面 ㆍ義兵들의 抗爭(趙東一) 137・138・161・163・334面 ㆍ騎驢隨筆 126・127・128・129面 ㆍ韓國學報(一志社) 16集 ㆍ-高等警察要史 11面 ㆍ梅泉野錄 492・498面 ㆍ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1卷 504・505・563・564面 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3卷 727・793・794面 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1卷 98・99・111・254・255・371・372面 3. 판결문 등 판결문 요약 이름/별명이은찬(李殷瓚) 당시나이32세 본적/주소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 신성리판결기관 경성지방재판소 죄 명 내란 생산년도1909 주 문교(絞) 판결날짜1909.05.08 사건 개요 정사의 변경을 목적으로 의병 양성자라 칭하며 도당을 모아 수십 명 내지 수천 명의 적도를 이끌고 무장한 채 경상, 충청, 황해, 경기도 등을 횡행하 며 수비대와 교전하는 등 관헌에 반항하며 국가의 질서를 방해한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