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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사진 자료> 4-2. 공적비명 (碑文;양평의병묘역/독립유공자공적비) 이연년(李延年) 지사의 휘는 연년(延秊)으로 본관은 청해(淸海), 초명은 목년(穆秊) 호적명은 득년(得秊) 자 (字)는 경문(敬文)호는 송석(松石)이니 一八七四년 十二월 九일 양평읍 대흥리에서 의병장 이승룡(李承龍)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一八九五年 의병전쟁에 나섰다가 남한산성에서 부 친이 순국하자 복수심에 불타 있던 중 一九0五년 일본이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一九0七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자 부수과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여 三十四세 때에 의병을 일으켜 용문 산을 근거로 적과 싸웠고 여주, 가평, 홍천, 횡성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一九0八년 청운면 삼성리 전투 중 부상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구금되었다. 옥중생활 八개월에 다시 완도의 고 금도로 유배되었으며 여기서 지사는 귀인을 만나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가서 재기를 꾀하 려다가 다시 귀국하여 인제군 한계리에서 五년을 은거하며 후학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의병 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주군 대신면으로 이주하여 대곡서당을 열고 후학을 양성하다 형사시효가 지나서 과천으로 가서 四년이 지난 다음에 대흥리 집으로 돌아왔다. 지사는 一 九四四년 四월 一일 조국 광복도 보지 못하고 생애를 마감하였다. 정부에서는 지사의 건국 공로를 인정하여 一九九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으며 후손으로 양평읍에 이중신이 살고 있다. 二0一0년 四월 二十일에 양평군에서는 지사의 사생취의(捨生取義) 위치명(爲致 命)의 높은 뜻을 선양(宣揚)하고 추모(追慕)하기 위하여 양평의병묘역 내에 비석을 세우다. 서기 二0一0년 四월 二十일 <묘지위치도> <묘지지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