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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공훈록> 이성서(李聖瑞) (1856~1909) (이명 : 聖西) 경기도 지평(砥平) 사람이다. 1907년 음력 8월 1일 의병장 정재학(鄭在學) 외 의병 80여 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경기도 적성군(積城郡)과 마전군(麻田郡) 등지에서 활약하던 중 일본인 약상(藥商) 안본 원사랑(岸本原四郞)을 총살하고 같은 달 신중원(申仲元)과 의병을 거느리고 경기도 삭녕 군(朔寧郡) 읍내에서 주사 모씨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 이후에도 계속 자신의 아들 이창준(李昌俊) 및 의병과 함께 황해도(黃海道) 토산군 (兎山郡)의 군청 이방(吏房)으로부터, 그리고 토산시장에서 동장・집강(執綱) 등으로부터 각각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피체되었다. 그 후 1909년 11월 1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 및 살인죄로 교수형을 언도받 아 공소하였으나 동년 12월 14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9卷, 國家報勳處, 1991年, p.685. 註ㆍ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532面 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卷 131~132面 3. 판결문 등 판결문 판 결 경기도 지평군 북면 양곡(砥平郡楊谷) 경성 중부 소립동(中部小笠洞) 거주 미장이 이성서(李聖瑞) 54세 경성 북부 계동(北部桂洞) 동소거주 고용인 이창준(李昌俊) 17세 경기도 수원 서문(水原西門) 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