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page

209 <공훈록> (2011년 이후 포상자는 공훈록이 등재되지 않았으므로 신문기사를 인용 ; 편자 주) (전략) 윤응선 선생은 학문의 명성이 자자해 1889년(고종 26) 의금부도사(조선시대 종6 품 관직)에 임명됐으나 이를 고사했다. 주역을 공부하던 1894년 41세에 의당 박세화를 만났다. 윤 선생은 본래 양평 출신인데, 병인양요 이후 조부를 따라 청풍 장선으로 이주 해 박세화를 스승으로 모셔 수제자가 됐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류인석의 호좌의진이 충주성 을 장악하고 기세를 올릴 때 동문들과 함께 동참했다. 1905년(고종 42) 초에는 청풍에서 척사적 성격이 가미된 향약을 조직하고 스스로 도헌 (조선시대 벼슬)을 맡아 활동하면서 일진회를 견제했다. 이 조직을 기반으로 그 해 여름 에 박세화와 함께 문경의 산속으로 들어가 의병을 일으키다 문경 헌병대에 구금됐고, 다 시 한성 감옥으로 이감돼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어 윤 선생은 일곡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다 지난 1925년 숨을 거뒀다. 음성의 충용사와 제천 병산영당에 선생의 얼과 혼이 모셔졌다. (중략) 국가보훈처가 명확한 근거자료를 요구해 윤희빈씨는 증조할아버지가 남긴 서적 ' 회당집' 8책을 해석, 근거를 마련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지난해(2015년;편자 주) 8월 15일 윤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았다. ☞ 出處 :『중부매일』, 2016.2.29.자, 3면 4. 기타 4-1. 묘지관련 의병 성명윤응선(尹膺善) 묘의소재지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산19번지 지형도및 위치도참조 문 화 재 등록번호 등록사항 없음 묘비제 (墓碑題) 晦堂處士坡平尹先生之墓 사진참조 묘비명 (墓碑銘) 先生諱膺善字君瑞尹氏系出坡平高麗太師公諱莘達之后入李 朝左議政襄平公諱士昕刑曹判書恭襄公諱繼謙德業勳烈著在 國乘四傳至尙衣院正諱綎號觀瀾昏朝政亂棄官敀楊根又六傳 諱宗彦文翰林在憲府文學直筆震耀史局是爲先生之六世祖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