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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공훈록> 안종응(安鍾應) 1845. 9. 21~1906. 5. 26 자 : 呂聲 호 : 退央 경기도 지평(砥平) 사람이다. 1896년 강원도 원주에서 아들 안승우(安承禹)와 이춘영(李春永)이 일으킨 의병부대의 실질적 후원자로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경사(經史)에 뛰어난 학자였던 안종응은 단발령 소식을 접하고 이미 무장항쟁에 뜻을 두고 있었다. 더욱이 아들 안승우가 일찍이 류중교(柳重敎)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이들 부자는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명성왕후 시해와 단 발령은 그로 하여금 의병 거의의 뜻을 세우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안종응은 아들 안승우와 이춘영에게 의병 거의를 권고하고 이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안승우, 이춘영 등은 원주 안창리(安倉里)에서 거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때 안종응은 이들 의병부대의 전투력을 증강하기 위하여 포군 김백선(金伯善)을 의병부 대에 끌어들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들 의병부대는 제천으로 가서 류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충주성을 점령하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류인석이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을 때 자기 대신에 안종응을 의병대장으로 추천할 만 큼, 안종응은 제천・충주 의진 내에서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14卷, 國家報勳處, 2000年, p.459. 註ㆍ義助(1902. 12月) ㆍ楊平義兵運動史(楊平文化院, 1966) 83面 ㆍ湖西義兵事蹟(李九榮, 1994) 148・149面 ㆍ한말의 堤川義兵(具玩會, 1997) 62~64・507面 ㆍ明窩集(李起振, 刊行年度 未詳) 上卷 6面 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輯 18面 4-3. 묘비명(묘갈명) 愛國志士退央安公鍾應墓碣銘 幷序(애국지사퇴앙안공종응묘갈명 병서) 朝鮮末期(조선말기)는 外賊(외적)의 침입으로 나라는 있으나 主人(주인)이 누구인지 분 간하기 어렵고 主君(주군)은 있으나 그 권위를 찾아볼 수 없어 國難(국난)이 풍전등화와 같은 시기였다. 公(공)은 을미사변과 단발령 후에 조국과 민족이 存亡(존망)의 위기에 처 해 있음을 직감하고 生死(생사)를 초월하여 항일구국투쟁에 나섰다. 公(공)의 名(명)은 鍾 應(종응), 자(자)는 呂聲(여성), 號(호)는 退央(퇴앙), 姓(성)은 安氏(안씨), 본관은 順興(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