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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2. 공적조서 및 공훈록 <공적조서> <공훈록> 안승우(安承禹) 1865~1896. 6 호:下沙 자:啓賢 안승우의 본은 순흥(順興)으로서 문성공 안유(文成公 安裕)의 후예이다. 대대로 지평 상석리(砥平 上石里)에서 살았다. 일찍이 학문 익히기를 좋아하여 성재 류 중교(省齋 柳重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 사건에 대한 소식에 접 하고 성재 문하의 인사들과 거사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때 동참하기로 한 서상열(徐相 烈)이 선산(先山)에 이별을 고하러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11월 단발령이 내려져 길이 막 혀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제천(堤川)에서 괴은 이춘영(槐隱 李春永)이 거사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달 려가서 11월 28일 의거의 기치를 내어 걸었다. 뒤이어 서상열이 동문인 이필희(李弼熙) 등과 의거하여 제천으로 달려왔다. 한편 이춘영은 지평군수 맹영재(孟英在)의 포수 4백 여 명과 맹장 김백선(金伯善)을 얻어왔다. 이에 1895년 12월 3일에 이필희(李弼熙)를 대 장으로 추대하고, 서상열(徐相烈)을 군사로, 이춘영(李春永)을 중군으로, 안승우(安承禹) 는 군무도유사(軍務都有司)가 되어 군용을 정비하고 친일 매국 역당의 앞잡이 장기렴(張 基濂)의 군대 및 왜적의 무리와 혈전을 시작하였다. 첫 번 싸움은 단양 장회협(長淮峽)에 서 전개되었는데 이 전투에서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의진의 당면 과제는 소모활동이었다. 단양전투에서 크게 성공한 후 이춘영과 서 상열은 남쪽으로 소모하러 떠났다. 그리고 이민옥(李敏玉)도 그들을 따라가고 안승우만 성 명안승우 한 자安承禹 이 명없음 성 별남 생년월일(1865) 사망년월일(1896-06) 본 적경기도 양평 상석리 주 소경기 양평 상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1962 훈 격독립장 공적개요 1. 1894년 義兵으로서 砥平郡 李永春과 함께 砥平에서 擧義하여 堤川으 로 달려가 倭敵과 抗戰하다가 1896년 殉死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