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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느티나무 수려하고 물 맑으며 예의 바르고 인심이 순박하여 살기 좋았던 이 초왕리 왕골은 한일합방 후에도 근 백척의 면내 굴지의 집단농촌마을이었든 바 서기 1918년 송수하 이만구 박복래 박학래 이동규 박경래 김태권 허환 나봉기씨 등 뜻있는 젊은 청년들이 노은 김형배씨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삼봉 허환씨를 총무로 하여 금계청년회를 조직하였으니 회원 60여명 이었다. 청년회는 야학당을 개설하여 문맹퇴치와 생활개선을 장려하고 애향심을 고취하였으며 이는 곧바로 애국애족정신으로 승화 발전되었다. 이듬해 기미년(1919) 고종황제가 붕어하자 청년회원 일동은 백색건을 쓰고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고 부락 뒤 왕재에 올라가 서울을 향하여 5배하고 곡하여 국장의 예를 지냈다. 하늘에 금계가 있어 새벽녁에 금계가 울면 천하의 수탉이 홰를 치고 우는 법 서기 1919년 3월 3일에 금계청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