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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광복, 다시 찾은 빛_굳은 의지와 진실한 마음으로 만든 미래 86 | 울산의 3·1운동 관련 주요참여자 성명 이명 생몰(生沒)(당시연령) 주요경력 독립운동(본적지) 수감피해 포상 내용 1 강경찬 姜庚贊 - - 울산언양만세 2 강기형 姜祺馨 1876.4.17~1940.7.27 유지 울산언양만세 징역6월 표창95 3 강문필 姜文必 1872.12.15~1953.8.25 울산만세 태90 표창09 4 강재주 姜在周 - - 울산언양만세 5 강존호 姜存鎬 - - 울산언양만세(양산) 6 고기룡 高基龍 1878.9.5~1947.12.29 울산남창만세 징역1년 애족98 7 곽해진 郭海鎭 - - 울산언양만세 8 곽해진 郭海鎭의 모 - - 울산언양만세 총상 9 권석운 權奭運 1900.8.18~1943.5.9 청년회 울산병영만세 징역6월 표창95 10 권작지 權作支 - 청년회 울산병영만세 11 김락수 金洛綬 김락수 金洛洙 1880.1.19~1919.6.2 유지 울산언양만세 징역6월 애국91 12 김두갑 金斗甲 - - 울산병영만세 옥중순국 13 김만출 金滿出 김제호 金濟浩 1904.4.25 청년 울산언양만세 14 김병용 金秉龍 - 울산만세 징역5월 15 김세진 金世鎭 - 청년회 울산병영만세 16 김송근 金松根 1901.9.16~1957.4.16 청년회 울산병영만세 표창02 17 김우상 金禹祥 - 울산남창만세 태90 18 김운봉 金雲峰 1893.12.4~1950.2.22 청년 울산언양만세 표창08 19 김원룡 金元龍 - - 울산언양만세 태90 20 김응구 金應九 울산만세 21 김응룡 金應龍 (1901)~1919.4.5 청년회 울산병영만세 애국91 22 김장수 金長壽 1887.5.20~1952.1.3 청년회간부 울산병영만세 현장순국 애족95 23 김재수 金在洙 1900.6.2~1949.6.29 청년회 울산병영만세 징역1년 표창95 24 김정원 金正元 1880.7.21~1961.8.18 유지 울산언양만세 징역6월 표창95 25 김정욱 金正勖 1883.1.12.~1947.3.6 울산언양만세 징역6월 표창2010 26 김충념 金忠念 1896.4.30 동래범어사승려 동래범어사만세(울산) 태90 27 김한익 金漢益 - 울산만세 징역6월 28 김한준 金漢俊 1884.1.27~1956.11.20 유지 울산언양만세 표창95 29 문성초 文星超 1887.12.30~1919.4.5 - 울산병영만세 징역6월 애국90 30 박규환 朴圭桓 1897.10.29~1947.1.3 청년회 울산병영만세 현장순국 표창07 31 박영하 朴永夏 - 청년회간부 울산병영만세 징역6월 32 박채우 朴采佑 - 울산언양만세 김상환,『경상남도의 3·1독립만세운동』, 2012 참조 남창의거 1919년 4월 8일, 학성이씨 문중 주도 고종황제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했던 이재락(李在洛)은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독립 선언서를 입수해 귀향하여 이수일(李樹一)에게 보여주었다. 이수일은 이 사실을 문중 원로들 에게 보고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청년 이수락(李壽洛)·이희계(李希季)·이쾌덕(李快德) 등은 봉기를 결의하였다. 4월 7일, 언양과 병영의 의거 소식을 접하며 이용락의 집 안방에서 밤을 새어가며 태극기를 만들었다. 4월 8일 남창 장날, 문중 청년들은 남창 장터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고, 이에 수백 명이 만세에 동참했다. 이에 놀란 일본 경찰이 위협의 공포탄을 발사하면서 주동 인물 이수락·이쾌락·이회계·이쾌경 등을 검거하였다. 간신히 몸을 피한 이용락은 광목에 ‘대한독립만세’ 라고 쓴 큰 깃발을 만들어 다시 장터로 나가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 4월 9일에 한 번 더 거사를 계획하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이 운동으로 10여 명의 인사들이 체포되어 7명이 징역 언도를 받고 부산·대구·서울 등지에서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