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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고개의 유래 양양의 기미만세운동은 1919년 4월 4일 양양의 장날부터 결행 남녀 노소, 종파신분의 구별없이 일심동체가 되어 연일 요원의 불길처럼 각 면으로 더욱 확산되었다. 동년 4월 9일 현북면에서도 궐기대회가 끝난 후 양양읍의 장 마당에 들어가서 그곳 군중과 장꾼들이 합세하여 만세운동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북면사무소 일부 관리들의 만류로 옥신각신하다가 그 계획을 변경하여 기사문리 주재소를 공격키로 하고 약 천명의 군중이 관고개(關峴) 길을 따라 넘어 선두는 이미 기사문리 주재소 앞에서 왜경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천지가 진동하는 만세를 연호하고 있었다. 이때 언덕 밑 계곡 숲속에서 미리 잠복하고 있던 일제 수비대와 경찰이 무차별 발포하여 현장에서 9명이 피살되고 20여명이 중경상을 당하였으니 그 참상은 천인이 공노할 만행이었다. 당시 이 고개는 "관고개"로 이름하여 일제시대까지 불러오다가 8.15 광복 후부터 이심전심 자연스럽게 "만세고개"란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명칭은 기미만세운동때 순국열사는 물론 당시 양양군민들의 희생적인 독립운동에서 발현된 이 고장의 고귀한 정신적 지주이며 실체이다. 새 천년 21세기 새벽을 여는 그 이름도 거룩한 "만세고개"여 영원하라! 2000년 3월 1일 글 양양문화원장 고경재, 양양군수 오인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