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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민족은 전통사상으로 충효를 숭상하고, 예의를 존중하여 왔다. 효는 백행지본이라 하고, 충은 정의지대절이라 하였으며, 예로써 질서를 정제하고, 의로서 기강을 정명하였으니, 이에 선현들은 비록 궁색하였으나, 안빈낙도하여 그 본분에 충실하였고, 국난에는 살신성인하여 그 대절을 사수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천강이 배척되고, 윤기가 와해되여 국불국이민불민하고, 부불부이자불자하여 세도가 판탕되고, 멸천난륜의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었인가. 갑오 동학민란 이후에 국가는 멸망되고 우금 백유여연간에 그 잔혹한 인화를 극복하며 이질 문화에 동화되여 고유의 예의 범백과 의관문물이 변질되고 시습풍속이 역변되었으며 상금 분단된 국토에 동족상쟁의 영일이 없다. 오호라. 조선왕조 개국 오백 유년에 비록 유학을 숭상하였으나 선현들의 가모양책이 실현되지 못하고 종래 탕탕한 왕도에는 실정하였고 내우외환의 정쟁 당화로 현준들은 초야에 은둔하고 탐관오리들의 행패에 민생이 도탄에 빠지니 급기야에는 동학당 민란이 창궐하였다. 동학당은 본시 종교집단으로서 당초에 호국안민이라는 기치하에 국정개혁을 표방하고 농궁민을 선동하여 대권에 반란하고 혁명을 획책하였다. 대저 호국안민이라는 명제는 본시에 성웅들의 대지로서 이는 3대 요도가 있는 겄이다. 첫째, 대본이요. 둘째, 대기요. 셋째, 대법이라 한다. 대본이라 함은 인심, 곧 천심 소재를 말함이요. 대기라 함은 시의로서 곧 대세의 변화를 말함이요. 대법이라 함은 부자간의 인도와 부부간의 가도와 군신간의 국법을 말하는 겄이다. 국가라 함은 대세에 의하여 성립되고, 인심에 의하여 존속되고, 법도에 의하여 인심의 향배로 변화되는 겄이다. 고대 혁명사에 의하면, 대세에 의하여 국민을 위한 혁명이 있고, 대세를 거역하고 사욕을 위한 무력혁명도 있으며, 혹은 집단 반란으로 세상을 소란케 하고 자멸한 집단도 있었다. 동학당은 시폐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감히 선배들이 성취못한 호국안민을 제창하였으니 과연 대세에 의합한 겄인가. 당시의 시폐는 과적된 고습으로서 조야가 공환된 사안이다. 국민들은의연히 대처하고 충의심이 불변하였으니 이겄이 대세에 변화가 없음을 말한 겄이다. 또한 일부지역의 소수집단 난동으로 시국을 소란케하여 국가에 위해하고 평온을 희구하는 국민과 괴리하였으니 이를 집단반란으로 규정한 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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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지자라면 자신의 입지를 성찰하고 경거망동은 자제하여야 하고 진정 애국자라면 국가 장래를 예측하여야 했다. 고어에 여급여로 해망이라는 말과 갗이 공멸하였으니 결국 자신은 물론이요. 무구한 다수의 양민을 희생케하고 평지풍파를 이르켜 종래 국가도 멸망하엿다. 동학당은 당초에 무지몽매한 궁민을 선동하여 농기구와 죽창 등 무모한 폭력을 의세하였으니 그 기세가 막대하였으나 충효사상으로 무장한 유림이 건재하고 오백 유년 전승하여 온 종사가 비록 국력은 허약할지라도 당당한 국본과 법통이 엄연한 현실을 감히 능멸하고 그 무모한 망동을 자행 하였으니 우리 공주 유림들은 안연히 좌시하지 않었다. 때는 고종조 갑오년 10월 사건이다. 동학당은 성군 작당하여 전라도지방 관아를 습격 강점하고 그 여세로 충청도를 침범하여 공주 감영을 침공하고 저 이인 취병산에 집결하여 이인 찰방을 유린하고 인근 민가에 약탈 방화 등 악행을 자행하여 민심과 괴리되였다. 본향은 자고로 충절의 고장으로서 유림들은 전통적인호국충절로써 단호히 이를 격퇴키로 의결하였다. 유림대표 양공 재목은 세전 유가 출신으로 학문이 고매하여 조야에 명망이 있고 관록을 사양하고 초야에 은일하여 있었다. 이에 반란군의 난폭에 분연히 창의하여 공주 부여 석성 등지의 의중을 초모하여 약 400여명이 운집하고 탄천 박씨문중의 비호 하에 탄천 송학리에 둔거하여 대비하였고, 관군은 이인 초봉리 후록과 주봉리 산협에 둔진 대치하였다. 반군은 공주로 진군하기 위하여 야음에 하산하고 정오 준비중임을 탐지하고 유림 의병이 기습 선제 공격을 감행하여 반군을 이인 구암리 방향 검바위 지점으로 축출하였고 관군이 일제히 출격하여 반군의 진로를 차단하고 의병과 전후협공하여 반군은 일패도지하고 용성리 산협을 통하여 계룡면 방향으로 패주하였다. 반군은 경천의 일부군과 합세하여 공주로 진군 중 효포리에서 관군과 격전하여 여기에서 괴멸되였다 한다. 의병은 시종 관을 보우하여 공주 일우를 방어하고 종래 평온 회복에 공헌하였다. 이에 국조로부터 유림 대표의게 포공의 은전이 있었다. 유림은 사도 본연의 충의대절을 다하여 국난에 공헌하여 도의 정신이 소○하였으니 공주의 전통이요 동아사문의 긍식으로 영세불민하리라. 후학 말예들은 감이 소수의 성으로써 영세구전하고저 근찬각명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