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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 사지유린어 왜적이경당 경술 국치야아. 일월이 무광하고 강산이 회명하도다. 이 국변의 소식을 들은 공은 동지 윤태병과 혈루 임리하고 절입 수삼일 후 갈충보국의 길을 모색하던 중 상해임시정부 요원과 연락을 맺고 홀로 국내를 탈출하여 황해를 횡단하니 대장부 일편단심 알고도 남음이 있지만 기 소조한 쓰라림 어떠하뇨. 불문가지리라. 상주 중 위연 왈 의여일 단신 독항해 만리 입행득의 신불겁수중장이라. 그 얼마나 조국광복에의 견고한 진념이리오. 수삼 주야 항해 끝에 상해 도착하여 임정 연락병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20여일 만에 입대케 되니 원래 군율의 지엄함은 주지의 사실이나 범사를 일일부비이불루자 연후에 피기적정 고로 우 불능불엄야러라. 이윽고 수개월을 경과하고 제반사에 숙달하고보니 아무리 중차대한 일이지만 무물이면 도저히 성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일일에 대장께 상언하니 대장 왈 소시는 공동이라 충무 전후방하니 군자금을 모금하여 사오복무에 충실케 하는 것도 소귀 동공이니 군은 다시 귀국하여 모금에 만전을 기하라 한대 다시 귀국하여 동지 윤태병 윤상기 임종구 신현창 조병채 김영진 이상설 강중건 이중기 제공과 더불어 모금에 전력을 경주하고 간접적으로 임시정부 탄생의 경위를 선전하여 애국에 원기를 고취하니 사반이공 배하야 추종자 다하고 의연자중이러라. 송금 역 지난하야 필대 연락병 이후에 수수 고로 도야행 자 수백번이며 밀약 처칙 비산칙 해변 고로 와신 노숙자 수십번이니 가위 즐풍모우로다. 이어 1919년 기미 춘에는 대동단에 가입하여 독립만세 호창에 앞장스셨고 동년 추에 대한건국단을 조직하여 기 취지서를 경기 충남북 일대에 배포하였으니 이는 곧 다같이 기의하여 왜구를 도수하고 조국강복을 쟁취하자는 격문이러라. 오호 위재라. 40평생을 불휼신여가하고 지존부국하여 임시정부 자금을 보충하다가 1920년 경신에 창귀배에 피체되어 발조 고문을 당하나 일불동요하고 지사 불언 전우소재하니 비확호 백인가도지단심이면 불가능야리라. 10년형에 7년을 복역코 출감하니 50 황혼에 여중가 첨병하여 불수가사한대 만영촌수하야 육영유락하고 1950년 경인에 서거하시니 정학행의지평생사가 어사족징이라. 범백과자는 필긍식우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