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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 권도인․ 이희경부부. Poinciana Blind (아름다운 커튼이라는 뜻)라는 상표로 하 와이에서 경영하던 가게에서 찍은 사진. 수 없는 일이었고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잠시 실망도 했지만, 그 녀는 이내 생각을 바꾸어 빈한한 생활 속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 부부는 역경을 딛고 가구사업가로 성 장했는데 이들은 사업과 함께 독립운동에 도 열성을 다했다. 권도인은 ‘대한인국민 회’를 비롯한 단체의 간부로 한인사회를 이끌어 나가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지 속적으로 자금 지원을 했던 대표적인 인 물이었다. 이희경 또한 다른 한인여성들과 함께 ‘대한부인구제회’를 결성하는 등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적극적으로 국권회 복운동과 독립전쟁에 필요한 후원금을 모 금․제공하였으며 애국지사 가족들에게 구 제금은 송금하는 등의 구제사업도 전개했다. 이희경은 매주 떡과 잡채, 산 적 등 음식을 만들어 팔아서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았고, 1918년 말에는 3•1독립 운 동자금 10만불을 만들어서, 네 살 먹은 딸을 친정부모님께 보여주기도 할 겸 귀국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지한 미화가 세관에서 적발되어서 일본경찰에 체 포 되어 돈은 몰수당하고 수감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타깝게 3•1운동의 소식 을 옥중에서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2년 후에 석방이 되어서 하와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가 독립운동을 위해 기부한 규모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 지 만, 1935년 이후 해방 때까지 신문 『국민보』에 기록된 것만 헤아려보아도 1 만 달러에 가깝다. 이를 볼 때 실제로 기부한 자금은 미주지역 전체를 대표 할 정도로 많은 금액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1928년 영남 출신 이극로李克魯가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하 던 길에 하와이에 체류하여 국어강연을 할 당시, 이승만이 이극로를 폄하하 며 영남지역에 대해 멸시하는 발언을 하면서 한인사회는 이승만을 지지하는 세 력 과 그 반대세력으로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 이때 이희경은 이승만을 지지했 던 국민회계열의 구제회를 탈퇴해 영남부인회를 새로 조직하였으며 곧 ‘영남부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