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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닭실마을은 안동권씨의 집성촌으로, 권벌 의 종택인 솟을대문 집이 있다. 종택은 소 박한 양반가의 전형이며 집 옆의 기념관에 는 「충재일기」(보물 제261호), 「연산일기」, 「 세초도」, 「근사록」(보물 제262호) 등 문화재 467점이 전시되어 있다. 대문 밖의 청암정 은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운 정자 로, 미수 허목(許穆)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다. 종택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울창한 소나무숲에 싸인 석천계곡이 있다. 이곳에는 권벌의 장자 권동보가 지은 석천정사가 있어 계곡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충재 종택과 청암정, 석천계곡 가 승하하였다. 남편은 머리를 풀고 미음을 먹으며 상을 치렀다. 그러면서 아침저 녁으로 황제가 있는 곳을 향해 망곡望哭하며 지냈다. 1920년 12월 20일(음력), 광무황제의 상기喪期가 끝나는 날이 다가왔다. 남편 이 명우는 자결의 결단을 내렸다. 그는 선비로서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길을 선택하 였다. 그리고 이를 지켜봐 왔던 권성도 남편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전인 12월 19일 저녁, 권성 부부는 자식들을 물리고 유서를 남겼다. 권성은 다섯 통의 한글유서를 남겼다. 세 아들과 친정동생, 시숙부와 시숙, 그 리고 며느리에게 주는 유서이다. 거기에는 “남편이 지금 장차 순국하고자 하니, 생각거대 혼자 남는 것은 의리에 맞지 않으니 함께 죽고자 합니다. 이에 짧은 편 지로 영원히 이별하고자 하니 비탄한 마음 감히 토해낼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 이 담겨있다. 이렇게 각각 유서를 남긴 이명우와 권성은 독을 마시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식들이 가서 보니 이미 순절한 상태였고, 부부의 머리맡에는 약 사발이 놓여있 었다. 이명우가 가는 길이 ‘충의忠義의 길’이었다면 부인 권성의 길은 충의忠義 를 받든 지아비에 대한 ‘의부義婦의 길’이었다. 이명우와 권성의 자결은 많은 의의를 가진다. 【권성 유적 및 탐방지】